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부회장이 이끄는 형지글로벌이 해외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간 최 부회장이 공들여온 미국 진출을 보류하는 대신 최근 중국 내 조달 시장 진출을 확정하면서다. 형지글로벌은 골프웨어 까스텔바작에 치우쳐진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한편 계열사 해외 진출을 도우며 영토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대신 중국
형지글로벌은 중국 단체복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 20일 현지 단체복 조달 전문기업 보노(BONO)와 '한중 복장조달'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형지글로벌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최준호 부회장이 직접 이 MOU를 직접 이끌었다.
형지글로벌과 보노는 연내 합자법인을 설립해 유니폼, 작업복 등 각종 단체복의 구매 및 납품을 아우르는 복장조달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형지글로벌에 따르면 공안, 법원 등 정부 기관과 철도, 우체국, 항만, 은행, 의료시설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 공급되는 중국 단체복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981억 위안(약 38조원)으로 전년보다 6.4% 성장했다.
원래 최준호 부회장이 중국보다 먼저 주목했던 조달 시장은 미국이었다. 조달은 단체복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조달 시장은 약 1000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부회장은 2021년 5월 형지글로벌(당시 까스텔바작)의 대표이사를 맡은 후 그해 말 미국법인 '까스텔바작USA'를 설립했다. 이어 202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골프웨어 브랜드 까스텔바작 1호점을 열며 미국 법인 설립 후 첫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이 때 형지글로벌은 미국 군납 의류 시장에 진출해 군복, 전투화 등을 납품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당시 형지글로벌은 미국 연방조달청 계약관리시스템(SAM)에 등록하고 현지 공장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다. 입찰과 납품 자격을 미리 얻어두기 위해서였다. 형지글로벌은 우선 미국 군납 의류 시장을 공략한 후 세계 최대 조달 시장인 UN 조달 시장에 진출한다는 청사진도 그려뒀다. 최준호 부회장은 같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미국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 진출은 녹록지 않았다.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형지글로벌은 지난해 4분기 까스텔바작USA를 처분했다. 결국 형지글로벌이 눈을 돌린 시장이 중국이었다. 중국은 계열사 형지엘리트가 이미 2016년부터 개척해온 시장이다.
형지엘리트는 2016년 현지 기업 보노와 중국법인 상해엘리트를 세우고 중국 프리미엄 교복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번에 형지글로벌이 중국 조달 시장 진출을 위해 보노와 손을 잡은 것도 형지엘리트의 오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골프웨어의 한계
최준호 부회장이 형지글로벌을 통해 계속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내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형지글로벌은 2016년 8월 패션그룹형지의 까스텔바작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설립된 회사다. 패션그룹형지는 2015년 3040 젊은 골퍼들을 겨냥해 중저가 골프웨어 까스텔바작을 론칭했다. 까스텔바작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면서 패션그룹형지는 2016년 까스텔바작의 글로벌 본사 PMJC를 인수한 데 이어 까스텔바작을 별도 법인으로 분할시켰다. 2019년에는 코스닥 상장도 마쳤다. 상장 당시 형지글로벌의 매출액은 814억원, 영업이익은 90억원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형지글로벌은 고전하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 실외에서 즐길 수 있는 골프가 각광 받으며 골프웨어 시장도 급격히 성장했으나 엔데믹과 경기 침체가 맞물리며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형지글로벌은 최준호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2021년 매출액 74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11.0% 성장했으나 4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이후 3년 연속 매출액이 뒷걸음질치면서 지난해에는 407억원의 매출액은 내는 데 그쳤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순손실이 누적되면서 2021년 700억원에 달했던 자본총액도 지난해 기준 404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자본총액 감소 탓에 2021년 65.9%에 불과했던 부채비율도 지난해 기준 120.5%까지 치솟았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말 형지글로벌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해외 교두보로
이에 따라 형지글로벌은 성장이 더딘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형지글로벌은 이전에도 꾸준히 해외 영토를 확장해왔다. 2018년 중국 최대 골프용품 판매점 100골프와 까스텔바작 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2019년에는 라이선스 계약으로 협업을 확대했다. 2018년에는 대만 패션유통 전문기업 킹본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까스텔바작을 수출하고 있다. 2023년에는 태국 최대 유통 기업인 센트럴그룹과 손잡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를 공략 중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두바이에도 진출해 현지 유통사를 통해 까스텔바작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 동안은 골프웨어 브랜드 까스텔바작의 해외 시장 확대가 중점이었다면 앞으로는 형지글로벌이 패션그룹형지 계열사의 해외 진출을 돕는 교두보 역할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를 위해 형지글로벌은 지난 3월 임시주주총회를 갖고 사명을 기존 까스텔바작에서 현재의 형지글로벌로 변경했다.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형지글로벌은 그간 쌓아온 공급망과 유통망을 활용해 패션그룹형지, 형지엘리트 등 계열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최준호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형지엘리트의 대표이사도 겸임하게 되면서 형지엘리트의 중국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형지글로벌은 까스텔바작의 글로벌 시장 확대도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중국에서는 100골프와의 협업을 통해 라이선스 매출을 계속 늘린다는 목표다. 대만에서도 킹본과 함께 현지화 전략을 강화할 예정이다. 형지글로벌은 사업 확대를 위해 시설자금 12억원, 운영자금 180억원 등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도 단행한다.
형지글로벌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경기 불황이나 국제 정세 등에 따라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외 사업은 그룹 전체적으로 중국 및 아세안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유통망 확대 등을 통해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