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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인 장 샤를 드 까스텔바작(Jean Charles de Castelbajac)과 만났습니다. 최 회장은 패션업계에서 대외 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CEO로 꼽힙니다. 패션그룹형지가 까스텔바작 본사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최 회장이 디자이너 까스텔바작을 만난 일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죠.
하지만 최 회장과 까스텔바작의 회동이 놀라운 것은 패션그룹형지와 까스텔바작이 최근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까스텔바작이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패션그룹형지가 소유한 본사에 소송을 걸면서 브랜드 취소 가능성까지 불거진 상황이었죠. 양측은 최근 긴 다툼을 마무리하고 화해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회동은 분쟁을 끝내고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셈입니다.
신성장동력이었는데...
까스텔바작은 패션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 까스텔바작이 1996년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설립한 후 선보인 동명의 패션 브랜드입니다. 디자이너 까스텔바작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키치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죠.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며 경영난을 겪다가 2011년 법정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2012년에는 PMJC가 까스텔바작을 인수하며 경영권이 넘어갔습니다.
국내에서는 EXR코리아가 2011년 까스텔바작의 국내 및 글로벌 상표권을 사들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EXR코리아는 당시 캐릭터, 캐주얼과 스포츠를 합친 '캐포츠' 브랜드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토종 스포츠 브랜드 EXR을 운영하던 회사입니다. 2011년 일본 이토추 상사로부터 까스텔바작 상표권을 800만 유로(당시 120억원)에 사들이며 화제가 됐죠.
EXR코리아는 국내에서 까스텔바작 브랜드로 캐주얼, 여성복 등을 선보였지만 실적이 썩 신통치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3년 별도 법인인 까스텔바쟉코리아를 세운 후 2014년에는 패션그룹형지에게 국내 상표권을 넘겼습니다. 이때부터 패션그룹형지와 까스텔바작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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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그룹형지가 까스텔바작 브랜드로 가장 처음 선보인 건 골프웨어입니다. 패션그룹형지는 2015년 봄부터 3040 젊은 골퍼들을 겨냥한 중저가 골프웨어 까스텔바작을 론칭했습니다. 론칭 첫해에 유통망을 100개 확보하고 3년 안에 매장을 300개까지 늘려 2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운다는 구상이었죠.
까스텔바작에 대한 최병오 회장의 기대도 컸습니다. 패션그룹형지는 2015년 6월 까스텔바작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기 위한 전시회도 열었는데요. 까스텔바작의 아시아 최초 전시회였죠. 골프웨어 까스텔바작의 예술적인 디자인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시회를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에는 최 회장과 까스텔바작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까스텔바작으로 3년 안에 골프웨어 시장 2,3위 안에 들 자신이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죠.
그래서였을까요. 까스텔바작은 금세 한국 시장에 안착하며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러자 패션그룹형지는 까스텔바작을 스포츠, 핸드백 라인 등으로 확장했고 일본 수출에도 나섰습니다. 2016년에는 아예 까스텔바작의 글로벌 본사 PMJC를 인수하기까지 합니다. 2016년 8월 까스텔바작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별도 법인으로 설립했고, 2019년에는 코스닥 시장에도 상장했죠.
잇단 소송에 속앓이
문제는 디자이너 까스텔바작과의 소송전이었습니다. PMJC는 2012년 까스텔바작의 회사를 인수할 당시 디자이너 까스텔바작이 개인적으로 창작한 일부 작품에 대해 까스텔바작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이 계약에는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이 적절해야 한다는 조항도 달려 있었습니다.
디자이너 까스텔바작은 이 조항을 들어 지속적으로 PMJC에 소송을 제기해왔습니다. PMJC가 무단으로 까스텔바작의 작품을 모방한 디자인을 써서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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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패션그룹형지가 PMJC를 인수한 이후 까스텔바작이 제기한 크고 작은 소송은 10여 건에 달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PMJC가 화장품 기업 '록시땅'과 2018년 크리스마스 제품을 출시하면서 까스텔바작의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소송입니다. 당시 제품에는 천사, 원색 등의 요소를 사용한 디자인이 사용됐는데요. 까스텔바작은 천사, 원색 등의 요소가 자신의 고유 요소라며 PMJC와 록시땅이 자신의 인격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외에도 까스텔바작은 PMJC를 상대로 초콜릿 회사와의 협업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소송, 영업 방해 소송 등을 제기했습니다. PMJC는 이들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한 상황입니다. 특히 까스텔바작은 지난해엔 아예 까스텔바작 브랜드를 철회해달라는 내용의 브랜드 취소소송까지 냈습니다. PMJC가 자신의 이름이 담긴 상표권을 기만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상표권을 몰수해야 해달라는 소송인데요. PMJC가 까스텔바작과의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하고 있다보니 브랜드 취소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죠.
브랜드가 취소된다면 PMJC는 더 이상 까스텔바작의 브랜드를 사용해 사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까스텔바작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는 패션그룹형지로서는 브랜드 취소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새로운 협력 관계로
결국 최병오 회장이 직접 파리로 향했습니다. 까스텔바작은 최 회장의 장남 최준호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이끄는 회사입니다. 패션그룹형지는 최 회장이 까스텔바작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 중인 최 부회장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고 하네요.
이번 회동을 계기로 패션그룹형지와 까스텔바작은 소송을 모두 마무리하고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최 회장은 "까스텔바작 디자이너와 만남을 갖고 시장 확대를 위해 협조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했다"며 "앞으로도 까스텔바작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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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과 까스텔바작은 앞으로 협업과 교류, 상생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요. 더 나아가 골프웨어 외에도 형지엘리트, 형지I&C와의 협업을 통해 까스텔바작을 스포츠웨어 등으로 확대하는 것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패션그룹형지는 소송이 모두 원만히 마무리 된 만큼 까스텔바작을 통해 해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는 구상입니다. 까스텔바작은 이미 중국 1위 골프용품 온라인몰과 골프전문 매장을 운영하는 '100골프'와 협력해 유통망을 확대했고요. 대만에서는 현지 패션유통 전문 기업 ‘킹본’과 파트너십을 통해 백화점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 제품을 공급 중입니다.
특히 최 회장은 까스텔바작을 한국에 다시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도 전달했습니다. 내년이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는 만큼 기획전을 여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하네요. 까스텔바작이 최 회장의 초청에 응해 10년만에 한국을 찾을지도 관심사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