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 업체들이 '가격'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와 근소한 차이로 점유율 경쟁을 하고 있는 KT&G는 가격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맞춘 반면 JTI코리아는 수익성 개선에 중점을 뒀다. 이들의 전략이 '승부수'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주도권 잡자
KT&G는 이달 궐련형 전자담배 스틱의 판매가격을 낮췄다. 이번 인하 품목은 궐련형 전자담배 '릴 솔리드'의 전용 스틱인 '핏'으로, 기존(4500원)보다 200원 내린 4300원이 됐다. '핏 체인지' 라인업 4종을 비롯한 '아이시스트', '아이싱', '쿨샷', '스파키' 등 총 8개에 적용됐다.
KT&G의 이번 가격 인하 결정에 따라 핏은 약 7년 만에 다시 4300원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KT&G는 지난 2017년 11월 국내 시장에 처음 릴을 내놓을 당시 핏의 가격을 4300원으로 책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세금 인상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핏의 가격을 200원 인상했다. 출시 두 달 만이었다.

KT&G는 소비자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제품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업계에서는 한국필립모리스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그동안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 '아이코스'의 전용 스틱인 '테리아' 가격을 4800원에 맞춰왔다. 하지만 지난달 초 필립모리스가 저가형 스틱인 '센티아'를 4500원에 출시하면서 KT&G가 우위를 점했던 가격 경쟁력에 대한 메리트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KT&G 입장에선 강력한 '견제구'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KT&G와 한국필립모리스의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 내 점유율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KT&G의 점유율은 46%, 한국필립모리스는 45%다. 언제든 판도가 뒤집힐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최근 일반 담배에서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소비자가 늘면서 이들 업체 사이에서 '수요 잡기'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궐련형 담배는 6억6000만갑이 팔렸다. 전년 대비 8.3% 증가했다. 그러는 동안 일반 궐련 담배는 28억7000만갑으로 1년 전보다 4.3% 줄었다. 전자담배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게 향후 이들 업체의 승부를 판가름하게 될 전망이다.가격이라도 올려야
이와 달리 일반 궐련 담배 시장은 가격을 상향 조정하는 분위기다. JTI코리아는 이달 일부 제품의 소매 가격을 최대 5% 올렸다. 당초 4000원이었던 '카멜 레전드' 라인은 4200원으로 인상됐다. '메비우스 이스타일'과 '메비우스 LBS 더블 캡슐'은 기존보다 각각 100원 올랐다. 이에 따라 이스타일은 4300원, LBS 더블 캡슐은 4600원에 판매되는 중이다.
JTI코리아의 가격 인상 이유는 '제반 비용 상승'이다. 일반 담배 한 갑당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이다. 인건비, 물류비 등 '안 오른 게 없는' 상황에 마진율까지 적은 탓에 부담이 가중됐을 것이란 평가다. 여기에 2015년 담뱃세가 대폭 오른 이후 10여 년 간 동결 기조를 이어온 점도 가격 인상 압박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JTI코리아의 경우 수익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필립모리스의 영업이익은 7.8% 늘었고, KT&G의 담배사업 부문은 10.7% 증가했다. 다만 같은 기간 JTI코리아의 영업이익은 0.8% 증가에 그쳤다. 주력인 일반 담배의 성장세가 꺾인 데다, 재도전에 나선 전자담배 시장에서의 성과마저도 신통치 않아서다.

JTI코리아를 제외한 국내 주요 담배업체들은 현재까지 궐련 담배의 가격 인상 계획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KT&G의 '디스', '타임' 등 4500원 미만 제품에 대해선 가격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부분 궐련 담배의 가격이 4500원에 맞춰져 있어 심리적 마지노선에 도달하지 않은 만큼 소비자 저항이 적다는 것이 이유다.
아예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장해 저조한 흐름을 보이는 일반 담배 시장에서 조금이나마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KT&G는 지난해 상반기 '에쎄 골든리프 0.5mg'에 이어 지난달 '에쎄 느와르'를 출시했다. 느와르는 일반 담뱃값보다 500원, 골든리프의 경우 1000원 더 비싸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담배의 판매량이 줄어드는 현 시점에 오히려 가격을 올렸다가는 수요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자칫 소비자 이탈로 수익성이 되레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