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이 7할이오
흡연자들이 하는 자조 섞인 유머 중에는 '흡연자들이 낸 세금으로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담배에 워낙 많은 세금이 붙어서 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실제로 담배에 붙는 세금 항목만 해도 지방세 명목으로 지방교육세와 담배소비세가 붙고요. 국세로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가 붙습니다. 부담금 항목으로도 870원을 더 냅니다.
금액까지 계산해 보면 담뱃값이 얼마나 부풀려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는 담배소비세가 1007원, 개별소비세가 594원 붙고요. 지방교육세 443원, 건강증진부담금이 841원입니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409원을 붙이고 폐기물 부담금 24원과 생산안정화기금 5원까지 내고 나면 세금만 3323원에 달합니다. 한 갑 가격의 73.8%가 세금인 셈입니다.

그런데 비흡연자에겐 다 똑같은 담배로 보이지만 세금 면에선 똑같은 담배가 아닙니다. 담배의 종류마다 세금 부과율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4500원 한 갑 기준 세금이 총 3004원입니다. 일반 담배(궐련)보다 319원 적습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2㎖ 제품이 1만원에 판매 중인데요. 일반 담배와 비슷한 기준을 적용해 보면 5000원(1㎖)당 세금은 2209원으로 판매가 대비 세금 비중이 44.2% 수준입니다.
담배에 붙는 세금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세분화돼 있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보면 담배소비세의 경우 궐련과 전자담배는 물론 파이프담배와 물담배, 씹는 담배까지 모두 다른 세율이 적용됩니다. 그런데 단 한 종류의 담배에는 이 모든 기준이 무효화됩니다. 바로 '합성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 담배'입니다.
담배인 듯 담배 아닌 담배같은 너
지난해 9월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핵심은 합성니코틴을 이용한 담배를 '담배'로 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행 담배사업법 2조는 담배를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에 따르면 합성니코틴은 담배가 아닙니다.
담배에서 제외된 합성 니코틴에는 어마어마한 혜택이 뒤따릅니다. 우선 앞서 설명드렸던 40~70%대의 세금이 붙지 않습니다. 합성니코틴 담배는 교육환경법상 담배 규제에서도 제외돼 있어 초·중·고등학교 근거리의 소매점에서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실제로 학교 앞에 합성니코틴 담배 무인판매대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광고도 자유롭습니다. 과일향 등 향을 더한 제품도 만들 수 있죠. 담배는 제조업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예외입니다. 담배 케이스에 의무적으로 넣는 경고 문구와 그림도 넣지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천연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 담배를 합성 니코틴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판매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수입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2023년 국내에 수입·유통된 합성니코틴은 2021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216톤에 달합니다. 지난해엔 300톤을 돌파했습니다. 무인 판매 매장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합성 니코틴이 천연 니코틴보다 건강에 '덜 나쁜' 것도 아닙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합성니코틴과 연초 니코틴 유해성 비교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유해물질이 ℓ당 2만3902㎎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천연니코틴 원액(ℓ당 1만2509㎎)의 두 배 가까운 양입니다. 유해성이 덜 해 세금을 안 내는 건 아닌 셈이죠.
'담배' 정의 바뀔까
업계에선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해야 한다는 데에 여야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언석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기 직전인 지난해 8월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고요. 2020년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송 의원실에 따르면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에 천연 니코틴과 비슷한 과세를 할 경우 1조원 이상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계산됩니다. 1조원의 세금이 더 걷히는데 '국민 건강'이라는 대의명분까지 갖췄으니 의원들로서는 두 손 두 발 들어 찬성해야 할 사안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계엄에서 탄핵으로 이어지는 정국이 법안 논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관련 업체들의 반발도 있습니다. 지난 10일 열린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해당 안건이 논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액상담배 판매업자들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에선 합성니코틴을 판매하는 점포가 4000개 이상인 것으로 봅니다. 대부분 소상공인인 만큼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기존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업자들이 모인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에서는 즉각 규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합성 니코틴을 규제하지 않는 건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는 기존 담배 판매업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 입장이 엇갈리지만 합성 니코틴이든 천연 니코틴이든 니코틴이라는 성분이 각성 효과, 중독 효과, 금단 증상을 발생시키는 물질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담배의 유해성 중 상당 부분은 '니코틴'에서 옵니다. 정부가 담배의 제조와 유통, 판매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국민 건강에 법적인 빈틈이 있다면 틈을 찾아 메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