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2025년 새해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해가 되면 가장 많이 하는 결심 중 하나는 '금연'일텐데요. 니코틴 패치나 니코틴 껌, 흡연욕구보조제나 흡연습관개선보조제 등을 이용해 금연을 하려고 시도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요즈음은 '합성 니코틴'을 금연 보조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성 니코틴이 상대적으로 덜 유해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담배는 안 되지만 담배의 주 성분인 니코틴이 들어 있는 껌이나 보조제는 왜 괜찮은 걸까요?
담배의 역사
담배의 역사는 아주 긴 편입니다. 루이지 산소네 등 이탈리아 학자들이 지난해 9월 국제분자과학저널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학자들은 대부분 담배가 기원전 6000년경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유래됐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기원후 1000년간 담배를 종교 의식과 의약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네요.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 등에서 흡연 전통이 발견됩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아주 오래 전에 담배가 존재했다는 징후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 미라에서 담뱃잎 조각, 니코틴과 같은 물질을 발견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집트 미라가 여기저기 옮겨지면서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흡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담배로 부르는 니코티아나(Nicotiana) 종이 아닌 다른 식물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담배의 첫 기록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원주민들에게 선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갔던 사람들이 유럽에 담배를 들여왔습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 주재 프랑스 대사인 장 니코 드 빌맹(Jean Nicot de Villemain)이 프랑스의 섭정이었던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담배를 소개했습니다. 카트린의 아들 프랑수아 2세의 편두통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는데요. 훗날 학자들이 장 니코 드 빌맹의 이름에서 따온 니코티아나를 담배 식물 종의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니코티아나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바로 니코틴(nicotine)입니다.
담배는 19세기에 자동화 공장이 생겼고 필립모리스와 같은 대형 담배회사들이 생기며 담배 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담배에는 치통, 암 등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담배의 유해성이 알려진 건 20세기 들어서입니다. 1941년 담배 판매 증가와 폐암 유병률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인데요. 현재는 담배에 다양한 발암성 화합물이 들어있다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죠. 그래도 여전히 전 세계 흡연자 수는 10억명에 육박합니다.
담배 아닌 담배
니코틴은 담배 식물에서 발견되는 정신 활성 물질입니다. 적은 양은 우리 정신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독성이 가장 큰 문제죠.
최근에는 담배 식물에서 유래한 게 아니라 연구실에서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합성 니코틴'도 나왔습니다. 세계에서 합성 니코틴 제품 소비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 다음이 한국이라고 하네요.
합성 니코틴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액상 담배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액상 담배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합성 니코틴 제품이 존재합니다. 합성 니코틴을 주입한 펠릿(작은 조각) 차잎, 합성 니코틴 이쑤시개 같은 제품도 있다고 하네요. 합성 니코틴은 연초 잎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담배 없는 담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연초 잎을 태울 때 나오는 타르와 같은 유해 물질이 없어 '상대적으로 덜 유해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국내에서는 합성 니코틴 제품을 담배로 보지 않습니다. 현행 담배사업법이 담배를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서입니다. 합성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합성 니코틴 액상 담배를 금연구역에서 사용하다 적발 되더라도 과태료를 내지 않습니다.
OECD 국가 중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제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글로벌 담배 회사 BAT로스만스가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노마드 싱크 5000'을 지난달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 출시한 것도 관련 규제가 없기 때문이었죠.
금연보조제냐 담배 대체제냐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서 규제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논란이 거셉니다. 합성 니코틴은 법적으로 담배가 아니기 때문에 경고문구, 광고 제한, 온라인 판매 제한 등의 규제도 받지 않습니다. 지방세와 개별소비세 부과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이 구입하는 데도 제한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0년 1.9%에서 2023년 3.1%로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합성 니코틴과 같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에 포함시키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추진 중입니다.
관련업계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는 합성니코틴을 포함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놨고요. 합성 니코틴 제품을 판매 중인 BAT로스만스는 일반 궐련형 담배와 똑같이 경고문구를 새기는 등 자율적으로 규제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반면 반대쪽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합성 니코틴 제품이 궐련 담배보다 덜 유해하기 때문에 금연 보조제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액상 담배를 금연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액상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일반 궐련 담배보다 덜 유해하므로 성인 흡연자에 한해 금연 도구로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니코틴 패치보다 액상 담배가 금연에 더 도움이 됐다는 연구도 있다고 하네요.
다만 국내에서는 합성 니코틴 제품이 실제로 덜 유해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합니다. 지난달에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상당수의 유해물질이 있다는 보건복지부 연구 용역 결과도 발표됐습니다. 일부 액상담배 협회에서는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반발하고 있긴 하지만요.
담배사업법 개정은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합성 니코틴 제품이 덜 유해한지, 똑같이 유해한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겁니다. 결국 담배는 모두 유해하니 금연을 서두르는 게 좋겠죠. 내년부터는 담뱃갑 포장이 바뀝니다.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폐암으로 가는 길', '남을 병들게 하는 길' 등 새로운 경고 문구와 그림이 표기된다네요. 건강을 위해 금연에 성공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