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간 글로벌 뷰티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K뷰티'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브랜드들이 평균 80%대 성장률을 기록했고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브랜드도 여럿 나왔다. 올해도 미국발 관세 폭풍과 불황을 넘어 고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거품 아니었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K뷰티 브랜드들 중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곳은 8곳에 달했다. 이들 중 에이피알과 클리오를 제외한 6곳이 지난해 처음으로 3000억원 고지를 밟았다. 이 8개사의 지난해 평균 매출 성장률만 99.7%로, 전년 대비 매출이 두 배가량 뛰었다.
지난 2023년보다 매출이 100% 이상 늘어난 '퀀텀 점프'를 이룬 브랜드도 3곳이나 됐다. 스킨1004를 운영하는 크레이버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32.7% 급증한 3181억원을 기록했다. 스킨1004 브랜드로만 2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킨케어 브랜드 '아누아'를 운영하는 더파운더즈도 같은 기간 매출이 1432억원에서 4278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나며 K뷰티 스타트업 경쟁에서 단숨에 최상위권으로 치고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K뷰티 브랜드들이 일제히 고성장을 이어가는 중에도 독보적인 성적을 내고 있는 브랜드들도 있다. 에이피알과 구다이글로벌이다. 두 브랜드 모두 매출 '1조 클럽'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조선미녀'로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매출이 330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7%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크레이버와 티르티르, 라카 등을 잇따라 인수했고 현재 서린컴퍼니 인수도 타진 중이다. 크레이버와 티르티르의 매출만 더해도 구다이글로벌의 지난해 매출은 9000억원대에 이른다. 서린컴퍼니까지 품에 안으면 올해 매출은 1조5000억원 이상을 기록할 전망이다.
에이피알은 화장품에 집중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뷰티 디바이스'를 앞세운 '투 트랙' 전략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에이피알의 뷰티 디바이스 부문(에이지알) 매출은 지난해 3126억원, 올해 1분기 90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0%를 웃돈다. 에이피알 역시 올해 매출 1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올해에만 2곳의 '1조클럽' 뷰티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좁다니깐
장기 불황으로 전반적으로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K뷰티 스타트업들이 지난해 초고속 성장을 이어간 데에는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만큼 불황에 따른 영향을 그만큼 덜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역대 최대인 102억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구매력이 낮은 동남아시아나 중국이 아닌 미국과 일본 등 국내보다 구매력이 높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장을 키운 것이 주효했다. 실제로 주요 K뷰티 브랜드들은 일본에서 인지도를 얻고 몸집을 키운 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코스를 밟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3배 이상 늘어난 스킨1004는 미국·중국·일본·동남아 등 해외 시장 매출이 98%에 달한다. 매출 성장률이 200% 가까웠던 아누아 역시 스킨1004와 마찬가지로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매출에 비해 국내 인지도가 낮은 이유다.
에이피알은 미국 매출 비중이 국내에 이어 2위다. 지난 1분기에 미국에서만 71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에서의 비중은 27%로 국내 매출(29%)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연말엔 미국 매출이 국내 매출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뷰티 시장 공략에 나섰던 대기업표 브랜드들은 불황 앞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한섬은 2021년 한섬라이프앤을 통해 뷰티 브랜드 '오에라'를 론칭했지만 지난해 매출이 50억원 수준에 그쳤다. 한섬은 지난해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한섬라이프앤을 흡수합병했다.
호텔신라는 2022년 로레알과 손잡고 합작법인 '로시안'을 세워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시효'를 론칭했다. 시효는 3년간 손실만 188억원을 떠안은 채 지난 1월 브랜드 사업을 종료했다. 국내 대표 뷰티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역시 국내 사업 부진을 북미 등 해외에서의 선전으로 메웠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나 중국 등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매출을 키우는 다른 업계와 달리 K뷰티 기업들은 일본에서 가능성을 타진한 뒤 미국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라며 "여러 브랜드가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며 이미 하나의 존을 형성해 성장 추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