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인 6명 가운데 1명은 암으로 죽는다. 수많은 항암제가 개발됐지만 암도 변이와 내성 등으로 진화하면서 '창과 방패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항암제 트렌드는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 세포를 공격하는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 치료제와 항암제 2~3개를 함께 투여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병용요법이 대세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이러한 방식에 주목하는 이유와 개발 현황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 주]
환자의 면역세포를 이용한 맞춤형 항암제 개발이 활발하다. 그 중에서도 면역체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T면역세포를 활용한 'CAR-T' 항암제가 요즘 '핫(Hot)'하다. 이러한 방식의 치료제는 단 1회 투여만으로도 암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아직 소수 품목만이 승인을 받아 국내 기업들에게도 기회의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바이오텍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르면 올해 안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내는 곳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1회 투여로 극적 치료 효과…FDA 허가 7개 불과
이른바 '꿈의 항암제'라고 불리는 CAR-T 세포 치료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CAR는 T면역세포가 암세포에만 도달하도록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T세포는 직접 적을 사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투병, CAR는 아군인 정상세포를 피해 적군인 암세포만 표시해주는 레이더라고 할 수 있다.
CAR-T 치료제는 환자 개인의 면역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어렵고 치료 비용이 수억원대로 높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다만 1회 투여만으로 완치 또는 극적인 치료 효과를 보여 '기적의 항암제'라고도 불린다.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승인받은 CAR-T 치료제는 2017년 노바티스가 개발한 백혈병 치료제 '킴리아'를 포함해 △길리어드 '예스카타' △카이트파마 '테카투스' △주노테라퓨틱스 '브레얀지' △BMS '아베크마' △얀센바이오텍 '카빅티' △오토러스 '오캇질' 등 7개뿐이다.

이들 치료제는 백혈병과 림프종, 골수병 등 혈액암 치료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혈액암은 암종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간암, 위암, 폐암 같이 일정한 형태를 갖는 고형암이 차지하고 있다. 킴리아가 최초 CAR-T 치료제로 개발된 지 8년이 지나도록 고형암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형암 치료는 쉽지 않다. 고형암은 주변에 면역체계를 억제하거나 약화시키는 일종의 방어막을 분비한다. 이로 인해 CAR-T가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는 것을 방해한다. 정상세포까지 사멸시킬 경우 부작용 위험이 높아 여간 쉽지 않다.
국내 바이오텍, 혈액암·고형암 치료제 개발 속도
CAR-T 치료제는 맞춤형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도 있다. 현재 나온 치료제는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것이다. 이를 우리나라 환자들이 사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한다. 환자 T세포를 뽑아 글로벌 제약사 본사로 보내고 거기서 CAR를 주입한 후 다시 국내로 보내줘야 한다. 대략 1~2개월이 소요된다. 국내 기업들이 CAR-T 개발에 성공한다면 이러한 기나긴 시간이 필요없이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CAR-T 치료제 개발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국내에서 CAR-T 치료제 개발 단계가 가장 앞서 있는 곳은 큐로셀이다. 큐로셀은 림프종 치료제로 개발중인 '림카토주'의 임상2상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앱클론은 CAR-T 치료제 개발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앱클론은 3개 CAR-T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 중 AT101는 현재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AT101를 빠르게 허가받기 위해 연내 '신속처리대상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되면 허가심사 기간을 75% 단축시킬 수 있고 임상시험 자료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다.
또 고형암인 난소암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는 'AT501'은 전임상을 진행 중이다. AT501은 암세포만 저격하는 CAR에 암세포를 성장시키는 단백질 추적 기능을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중 레이더를 장착했다고 볼 수 있다.

셀랩메드는 지난 3월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치료제로 개발중인 'CLM-103'의 임상1b·2a상을 승인받고 현재 환자모집을 준비 중이다. 임상 1b·2a상은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동시에 검증하는 1상과 2상의 중간 단계다. 셀랩메드는 뇌교종을 이식한 동물 대상 실험에서 CLM-103의 유의미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한 바 있다.
유틸렉스가 간세포암 타깃으로 개발 중인 'EU307'은 국내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박셀바이오의 고형암 타깃 'VCB-1204'는 전임상 단계에 있다.
이밖에도 세포유전자치료제 기업인 셀렌진도 범용적 CAR-T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해외에서 다수 특허를 획득, 자체 개발 및 기술이전 등을 추진 중이며, 바이넥스는 일본의 노일이뮨바이오텍 지분 투자를 통해 차세대 고형암 CAR-T 치료제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이다.
1개 품목 매출만 수조원…글로벌 기업 도약 기대
CAR-T 세포 치료제 시장은 성장세가 크다. 업계에 따르면 2023년 관련 시장은 37억4000만 달러(5조2000억원)에서 2029년까지 연평균 39.6% 증가해 290억 달러(40조 3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아직까지 소수 글로벌 기업들만 개발에 성공한데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에 기회가 열려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CAR-T 치료제 중 예스카타의 지난해 매출액은 16억 달러(약 2조3000억원)로, 단 하나의 CAR-T 치료제 매출이 국내 상위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매출에 맞먹는다"면서 "CAR-T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경우 단숨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