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만에 수장을 두번 잃은 금융감독원이 충격에 빠졌다. 지난달 최흥식 전 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에 휘말려 취임 183일만에 물러난데 이어 후임자였던 김기식 전 원장(사진)은 '셀프 후원' 등 의혹에 2주를 버티지 못했다. 취임사에서 "감독당국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했던 김 전 원장이 14일만에 사퇴하면서 금감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됐다.
한 금감원 국장은 원장들의 사퇴에 대해 "할말이 없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국장은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며 금감원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달 최흥식 전 원장이 사임할때는 당혹스러웠다"면서도 "김 전 원장은 취임 3~4일 만에 외유성 출장 의혹과 본인의 말과 다른 팩트가 나오자 직원들이 어느 정도 (사퇴를)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크게 흔들렸다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 전 원장은 임직원들에게 "죄송합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메일로 보냈다. 그는 "그동안 여러가지 일로 상처받은 여러분께 제가 다시 상처를 드렸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 금감원의 위상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누를 끼친 점에 대해 거듭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썼다.
금감원 내부 사기 저하보다 더 큰 문제는 업무 공백이다. 삼성증권 배당사고, 금융권 채용비리 등 금감원 앞엔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있다. 당장 삼성증권 검사기간도 이달 19일에서 27일로 연장했고, 김 원장의 지시로 신한금융에 대한 채용비리 검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김 원장은 최근 저축은행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연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하는 저축은행은 언론에 공개하고 대출영업을 일부 제한하겠다"고 압박했다.
담담한 심경을 전했던 금감원 국장은 "대외적으로 추진력은 다소 약화될 수 있다"면서도 "수장이 없어 금감원 운영방향은 정해지지 않지만 그간 원장이 했던 말들은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장이 교체되고 나면 전 원장의 기조를 유지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금융당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검사 방향이 오락가락하면 금융회사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당분간 금감원은 유광렬 수석부원장이 끌고 갈 예정이다. 유 수석부원장은 최흥식 전 원장에 이어 김 전 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직무 대행을 두번 맡게 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유 수석부원장은 이날 오전 임원들과 티타임을 갖고 "삼성증권 배당사고 등 현안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앞으로 관심은 누가 신임 금감원장으로 오느냐다. 최 전 원장과 김 전 원장이 채용 청탁과 외유성 출장 '관행'에 발목이 잡힌 만큼 전문성과 함께 '평균 이상의 도덕성'을 겸비한 인사를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금융개혁 의지를 수행할 실행력까지 갖춰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금감원이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점도 부담이다. 여야는 금감원장 인사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어 후임 금감원장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 '털어서 먼지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기식 전 원장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날 그는 페이스북에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결정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의 판단을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이라며 다만 "법률적 다툼과는 별개로 이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도리"라고 썼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그가 추진하던 금융개혁도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