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업계에서 '제판분리'는 해묵은 과제다. 제판분리는 GA를 판매전문회사로 전환해 보험상품의 제조(보험사)와 판매(GA)를 분리하자는 것이다.
2008년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을 통해 보험판매전문회사를 도입하는 방안이 무산된 이후 2015년 판매채널 제도개선 작업으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차가 커 논의가 중단됐다.
GA업계에서는 이 해묵을 과제를 최근 다시 꺼내 들었다. 법적인 근거가 마련돼야 해 당장 추진은 어렵지만, GA의 규모와 위상이 달라진 만큼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는 이유다.
GA업계는 최근 보험대리점협회를 중심으로 중대형GA 대표들이 모여 향후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구성 초기단계여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이 위원회에서는 판매전문회사 도입도 주요 안건중 하나로 다뤄질 예정이다.
이미 대형GA 대표들 간에는 GA업계가 판매전문회사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이 이뤄진 상태다.
그렇다면 GA가 판매전문회사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 판매전문회사 도입 논의 '공회전'
2008년 처음 판매전문회사 도입 논의가 이뤄졌을 당시에는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사들은 상품개발에 역량을 다하고 판매전문회사가 판매의 모든 부분을 전담하되 소비자보호를 최우선에 둔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러나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 등 세부기준을 놓고 갈등했던 보험업계가 거세게 반발해 논의가 중단됐고 법 개정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에는 GA도 판매전문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다.
2015년 다시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 이슈가 불거진 것은 불완전판매율이 높은 GA에 1차적 배상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보험업계의 건의에서 비롯됐다. GA 대형화로 시장내 영향력이 커지고 보험사의 관리와 통제가 어려워진만큼 GA 진입요건과 책임을 강화해야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판매자 배상책임을 강화하게되면 결과적으로 제판분리의 단초가 될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도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GA에 보험중개사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뜬금없는 안을 내놨다.
금융당국이 보험중개사 지위 부여를 제시한 것은 법 개정이 어려워 현행 보험업법 체계 내에서 GA를 규제하려는 것이었지만, GA와 중개사의 사업영역이나 목표가 달라 '맞지 않는 옷을 입혔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욱이 GA가 보험상품중개업자로 전환하면 금융회사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자본금 요건이나 금융회사 지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워낙 민감한 사항들이다 보니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논의는 공회전 끝에 또 다시 무산됐다.
이 와중에도 GA는 보험사 전속설계사 수를 뛰어넘는 규모로 커졌고 올해 1분기에는 GA가 판매해 거둬들인 보험료가 전체의 50%를 넘어서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보험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재정적인 부담이 커진 일부 보험사들이 영업조직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GA의 대형화와 영향력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속 채널이 아예 사라지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제판분리의 모습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 보험사 "판매자 배상책임 확대부터" vs GA "판매전문회사 전환이 먼저"
보험업계는 현 대리점체제 내에서 GA에 판매자 책임을 강화해야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보험판매전문회사가 생기면 보험사의 가장 큰 기능인 영업, 보상, 상품개발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 조직이 크게 축소되기 때문에 도입 자체를 반기지 않는다"며 "다만 이미 GA가 전체 거수보험료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그에 따른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수보험료를 기준으로 볼때 GA도 보험사가 감독당국으로부터 받는 정도에 준하는 내부통제와 모집조직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GA업계는 일정 요건을 갖춘 GA의 경우 판매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판매전문회사로 전환이 우선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보험사를 대신해 보험계약을 대리하는 역할에 국한된 만큼 1차적 배상책임을 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대형GA 대표는 "아직까지 보험사들은 GA를 독립법인대리점, 즉 독립적 채널이 아닌 소속 대리점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GA에 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판매전문회사로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몇몇 GA들은 이미 판매전문회사 전환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로 판매뿐 아니라 언더라이팅, 고객관리를 위한 준비도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판매전문회사로 인정받게 되면 보험계약을 중개하는 독립적 지위를 얻기 때문에 판매책임이 강화되고 법적 지위에 맞게 자본금을 쌓고 배상책임을 준비해야한다"며 "일정 수준의 요건을 갖춘 곳들에게는 적절한 기능을 줘 양성화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이러한 전제없이 무조건 책임만 지우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길만 보험대리점협회장도 "법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대리점에 책임을 전가하려면 대리점업계에도 그만큼의 권한을 줘야 한다"며 "보험사가 아닌 보험 계약자를 대리하는 위치에서 보다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 보험료협상권(요율협상권)을 주고 고객관리에 따른 유지수수료 등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판매전문회사로 가야하는 만큼 업계내에서도 자본금, 내부통제, 감사인력, 소비자보호조직 등을 갖추고 준비해 나가고 있다"며 "업계에서 자체적으로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회사별로 상황이 다른 만큼 내부의 목소리를 모으고 의견수렴을 위한 작업을 진행중에 있다"고 밝혔다.
◇ 한발 물러서 있는 금융당국
금융당국은 현 상황에서 소비자보호를 위해서는 보험사가 1차적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으로 GA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GA를 판매전문회사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다. 이해당사자간 의견차가 커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데다 법개정을 통한 제도 마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GA가 아닌 보험사를 보고 가입을 한다"며 "소보자보호 입장에서 볼때 (현 체제 내에서) 보험사가 1차적인 배상책임에서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판매전문회사와 관련해서는 GA업계에서 관련 건의가 들어오면 추가로 검토해 볼 것"이라면서도 "현재는 논의가 전면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완전판매 문제는 특정 채널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보험업계 전반의 문제로 봐야한다"며 "GA내에서도 조직이나 주력상품에 따라 차이가 커 이를 GA만의 문제로 단정 지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전속이 아닌 독립채널(GA)의 시장 확대는 일정부분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보험의 유지·관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제판분리로 시장이 전환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며 "GA가 (제판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배적인 채널로 올라서게 되면 가격협상력이 높아져 수수료가 올라가고 상품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보험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처럼 어느 지점에서 전속과 독립채널이 일정비율로 균형점을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