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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정체성 혼란]②겸업주의냐 전업주의냐

  • 2019.11.28(목) 16:18

DLF사태 계기로 논란 확대
"겸업, 고위험상품 우려·타금융 기회 박탈"
"전업, 은행 수익악화·금융산업 발전 저해"

최근 DLF 사태 등으로 은행 업계가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금융기관이냐, 금융회사냐', '모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겸업주의냐, 핵심에 집중하는 전업주의냐'하는 논란이 불거졌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은행에서 변화할 것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혼란스러운 국내 은행의 현주소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이번 (DLF 사태) 조치에서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국내 금융업이 겸업주의로 갈지 전업주의로 갈지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생각을 갖고 있는지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가 원금손실 가능성이 20% 이상인 사모펀드의 은행 판매를 제한한 DLF 대책을 발표한 이후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숙제로 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은 위원장도 평소 고민하던 문제다. 그는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의 전업주의가 좋은지, 겸업주의가 좋은지는 판단하기 이른 시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DLF 사태를 계기로 은행이 수신과 여신 등 고유업무 외에 금융투자상품 등을 파는 겸업주의를 계속 끌고 가야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의 겸업주의는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DLF 사태'와 같이 은행에서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겸업주의냐 전업주의냐'에 대한 뚜렷한 답은 아직 없지만 금융당국은 고난도 사모펀드외에 신탁도 은행이 팔지 못하도록 제한하려 한다. 지난 14일 은 위원장은 "증권사와 달리 은행은 예금과 같이 원리금 보장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만큼 투자자를 오인시킬 수 있는 고위험 상품 판매는 자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업계는 '전업주의'로 돌아갈 경우 수익성이 악화할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의 발전이 더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 겸업 확대 정책 사고 나자 '멈칫'

국내 은행들의 겸업주의는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 통과로 금융지주체계가 안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금융당국은 2003년 은행의 보험 판매 허용(방카슈랑스), 2014년 복합점포 개설 허용 등 지속적으로 은행 중심의 겸업 확대 정책을 펼쳐왔다.

은행이 다시 '전업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최근 발생한 DLF 사태가 불을 지폈다. 은행이 금융업 중 국민의 신뢰도가 높은 업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은행은 신뢰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은행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내에서 채택하고 있는 겸업주의는 금융지주회사 아래에서 겸업을 허용하도록 한 것"이라며 "대부분 금융지주가 증권사, 보험사 등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고 관련 상품은 해당 계열사에서 판매하면 된다"고 말했다.

은행의 겸업주의는 오히려 중소형 금융투자회사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은 "은행의 겸업주의는 금융지주 계열사들에 비해 경쟁력을 키우기 힘든 중소형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의 기회를 박탈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 "전업주의 돌아가면 은행 수익성·금융산업 후퇴"

은행업계는 전업주의로 돌아갈 경우 수익성 악화를 가장 걱정한다. 동시에 국내 금융산업이 독과점 구도가 굳어져 오히려 국내 금융산업을 후퇴시킬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은행업계는 현재 최대 수익원인 이자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 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올해 3분기 국내 은행이 이자를 통해 수익을 얼마나 냈는지 나타내는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영향이 반영되면서 지난해 3분기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했다.

은행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순이자 마진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은행이 전업주의로 돌아가게 된다면 은행 수익성은 악화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은행이 이자로 장사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데 전업주의로 돌아간다면 은행은 어떻게 수익을 내야하느냐"고 토로했다.

전업주의로 돌아가면 국내 금융산업이 후퇴할 것이란 우려도 많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은행을 다시 전업주의로 돌린다면 각 계열 증권사나 보험사의 점포 등을 새로 신설해야 하고 은행을 중심으로 현재 갖추고 있는 원스톱금융, 모바일뱅킹 서비스도 무용지물이 된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에서 판매하는 펀드에는 중소형 자산운용사가 만든 상품이 있고 방카슈랑스의 경우도 중소형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며 "은행에서 다른 금융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자본이 풍부한 금융지주 산하 금융회사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서 경쟁이 줄어들고 이는 곧 금융산업이 후퇴하게 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DLF사태로 은행이 전업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겸업주의가 갖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며 "이는 사회적 합의가 좀 더 필요한 내용이다. 당장 결정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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