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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정체성 혼란]③수성이냐 혁신이냐

  • 2019.12.02(월) 16:49

은행업 중심축, 금융에서 기술로
ICT 기업 도전…은행 시장 '수성' 해야
규제 강한 은행, '혁신' 최대 고민

최근 DLF 사태 등으로 은행 업계가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금융기관이냐, 금융회사냐', '모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겸업주의냐, 핵심에 집중하는 전업주의냐'하는 논란이 불거졌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은행에서 변화할 것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혼란스러운 국내 은행의 현주소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2006년 발간된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다'는 업계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선제적으로 알린 책이었다. 당시 닌텐도가 집에서 스포츠 경기를 할 수 있는 게임기 '위(Wii)'를 출시하면서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더 이상 아디다스 등 의류회사에 머물지 않았다.

견고했던 금융업권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은행의 상대는 구글이다'이라 말이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얘기만은 아니다. 지난달 허인 KB국민은행장은 창립 18주년 기념사에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CT(정보통신) 거인들도 금융을 제공하는 IT회사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회사도 은행과 경쟁하는 시대다. 금융지주 회장들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바일 결제 앱이 스타벅스라는 점을 강조하며 은행과 스타벅스가 경쟁하는 시대가 왔다고 알리고 있다.

올해 초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스타벅스 선불카드와 앱에 충전된 현금은 일부 지방은행의 규모를 뛰어 넘을 정도다"며 "스타벅스처럼 혁신하자"고 주문했다. 김광수 NH농협금융 회장은 스타벅스와 같이 "전문성 중심으로 인력을 육성하고 관행적 구습도 없애자"고 강조했다.

◇ 허물어지는 벽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렀던 국내 은행에 예상치 못한 경쟁자가 나타난 것은 2015년 쯤이다. 당시 금융에 ICT기술을 접목한 '핀테크'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이 창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은행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인허가 사업'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독점해온 시장이 쉽게 허물어질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케이뱅크(KT), 카카오뱅크(다음카카오)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오픈 2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은행 앱으로 자리잡았다. 은행이 방심하다 1위 자리를 ICT기업에 내어 준 셈이다.

여기에 네이버, 카카오, NHN 등 ICT기업 중 플랫폼 기업이 간편결제 사업을 시작하면서 은행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오는 18일 부터는 플랫폼 형 ICT 기업과 핀테크 기업이 은행업계의 고유 업무에도 간접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오픈뱅킹'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88곳의 핀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기능과 보안테스트를 진행중이다. 이들이 보안테스트를 통과하면 이들이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은행계좌 조회, 이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은행의 고유 영업 영역의 벽이 무너지게 되는 셈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오픈뱅킹이 시작되면 국내 은행산업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특히 많은 사용자와 높은 이용률을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은행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쉽지 않은 '혁신'

대형ICT기업 등 경쟁이 거세지면서 은행도 '혁신'하고 있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은행은 은행법 상 고유업무 외 부수업무는 할 수 없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KB국민은행이 출시한 가상이동통신망 (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을 이용한 알뜰폰 사업인 'Liiv M'이 대표적인 사례다. KB국민은행은 2년전 이 사업 아디이어를 냈지만 사업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것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규제특례를 받은 올 초부터다. 그만큼 은행들의 운신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오픈뱅킹에 대비한 은행의 대응책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은행 관계자는 "오픈뱅킹에 참여하는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은 페이 형식으로 간접 소액 수신의 역할도 하고 있다"며 "사실상 여신을 제외한 은행의 고유업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은행이 규제 산업이며 금융소비자 보호가 최우선 과제다 보니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라며 "은행이 안전하고 편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금융거래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모든 은행의 수장들이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혁신을 통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은행은 규제의 영향을 많이 받고 특히 우리나라의 은행 규제는 강한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은행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기업과 손 잡거나, 기존의 서비스를 좀 더 편하고 쉽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은행이 할 수 있는 혁신의 전부"라고 설명했다.[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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