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여신기능이 사실상 중단돼 은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계좌이체 앱 아닙니까?"
금융권 관계자는 케이뱅크를 이렇게 빗대더군요. 계좌이체 때 수수료 무료 말고는 이용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은행이 대출을 중단한 건 수익창출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고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자는 쥐꼬리인데 정작 급할 땐 돈도 빌려주지 않다면 그런 은행과 거래할 고객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집에 있는 돼지저금통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케이뱅크가 '식물은행'으로 전락한 건 규제 때문입니다. 그것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살리겠다고 도입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이하 인터넷전문은행법)'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난해 1월 시행한 이 법은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결합)산업 활성화를 위해 산업자본(비금융 주력자)에 대한 지분규제를 34%까지 풀어줬습니다. 케이뱅크의 대주주인 KT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인 카카오가 각각 10%였던 지분을 34%까지 늘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겁니다.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기존 은행법에 있던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탈이 났습니다. 대표적인 게 대주주 적격성 심사입니다. 10%를 초과해 지분을 늘리려면 최근 5년내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 사실이 없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려있는 곳이라면 적격성심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 KT가 지난해 케이뱅크에 59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려 했지만 금융위는 과거 KT의 담합혐의를 문제삼아 승인을 보류했습니다. 카카오뱅크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공정위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구요.
한번만 심사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은행법상 은행 대주주는 6개월에 한번씩 공정거래법 등을 잘 지키고 있는지 심사를 받습니다. 위반사항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의결권 제한이나 지분 매각명령을 받게됩니다. 누군가에게 밉보이면 애써 키운 은행이 날아갈 수 있는 살얼음판 구조인 거죠. 이는 포털 1위 사업자인 네이버가 국내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카카오뱅크는 금융위 승인을 받아 지난해 11월 카카오로부터 증자를 받았습니다. 반면 케이뱅크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걸려 지금껏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NH투자증권·GS리테일·KG이니시스 등 KT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곳들은 KT만 바라볼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구요.
은행이 대출을 해주려면 자기자본이 넉넉해야 합니다. 대출이 부실해져도 버틸만한 체력을 갖고 있으라는 의미에서 국제결제은행은 위험가중자산에서 차지하는 총자본의 비율(BIS비율)이 8%를 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지키지 못한 은행에 금융위는 인원감축·자산매각 등을 요구하며 회초리를 듭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BIS비율이 8% 미만이라는 건 사실상 은행으로서 존립이 어렵다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케이뱅크 출범 초기 25%에 달하던 BIS비율은 계속된 적자로 지난해 6월 10%선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4월부터 대출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했기에 이런 수치를 유지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10% 미만으로 내려앉았을 것으로 금융권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케이뱅크 내부적으로는 올해 6월 BIS비율이 9% 초반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출범 4년차를 맞는 내년에는 배당제한 등 금융위의 경영지도대상(BIS비율 9.25% 미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은행이 은행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자본확충이 필수입니다. 산업자본이 진출할 통로를 만들어놓고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면 그건 통로가 아니라 벽일 뿐입니다.
국회도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습니다. 대주주의 결격사유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여야 간사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채이배 의원의 반대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산분리(은행과 산업자본 분리) 원칙 훼손을 걱정했다면 국회는 인터넷전문은행법 자체를 통과시키지 말았어야 합니다. 여러 논란를 무릅쓰고 은행업의 혁신을 위해 '메기'를 풀어놓기로 했다면 메기가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줘야합니다.
케이뱅크가 옴짝달싹 못할 때 인터넷전문은행은 점점더 카카오뱅크의 독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카카오뱅크의 여신액은 13조6000원, 수신액은 19조9000억원으로 케이뱅크에 비해 각각 9.2배, 7.9배 많습니다. 카카오뱅크 고객수는 1100만명을 넘은 반면 케이뱅크는 120만명 수준입니다. 대략 10대 1의 격차가 납니다.
독과점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 특정 인터넷전문은행의 독점을 초래하는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카카오뱅크가 하면 로맨스고 케이뱅크가 하면 불륜인 걸까요. 국회와 금융당국은 답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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