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인터넷은행 진출이 다소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29일 본회의를 열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표결에 붙여 재석 209명 중 찬성 163명, 반대 23명, 기권 23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지난달 5일 본회의에서 부결된지 55일만이다.
개정안은 금융위가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심사할 때 공정거래법 위반 관련 심사를 완화하는 게 핵심이다. 기존에는 최근 5년내 공정거래법 위반사실이 있을 경우 일정 한도(10%,25%,33%)를 초과한 지분보유가 금지됐으나, 이번 개정으로 불공정거래와 일감몰아주기 등이 아니면 공정거래법 위반을 따지지 않게 됐다.
원래 여야는 공정거래법 위반 자체를 대주주 자격심사에는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달 본회의 부결 사태를 겪은 뒤 공정거래법 23조(불공정거래행위 금지)와 23조의2(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제공 금지) 위반은 대주주의 결격사유로 남겨두기로 개정안을 바꿨다.
법안처리 과정에선 진통이 적지 않았다. 이날도 채이배 민생당 의원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민주노총, 경실련, 민변 등 시민단체와 함께 케이뱅크의 대주주인 KT를 위한 특혜라며 개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KT가 직접적인 수혜대상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KT는 지난달 인터넷은행법의 국회통과가 무산되자 자회사인 BC카드를 통해 케이뱅크 자기자본을 확충해주는 '플랜B'를 가동했다. 개점휴업 상태인 케이뱅크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이에 따라 BC카드는 지난 17일 KT가 보유한 케이뱅크 지분 10%를 전량 인수한데 이어 오는 6월 케이뱅크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34%까지 확보하기로 했다. 인터넷은행법에 허용된 최대한도까지 지분을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ICT 기업의 혁신성을 금융에 불어넣기 위해 인터넷은행법이 만들어졌는데 대주주 규제가 뒤늦게 풀리면서 카드사가 은행을 지배하는 엉뚱한 그림이 되고 만 것이다. BC카드의 부담도 크다. 케이뱅크 지분확보에 드는 돈은 약 3000억원으로 BC카드는 '알짜'인 마스터카드 주식 145만주를 내다팔아 자금을 마련할 방침이다.
KT 관계자는 "이미 이사회 승인과 유상증자 일정까지 확정된 상태라 이를 물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BC카드가 KT를 대신해 케이뱅크의 대주주가 되는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케이뱅크의 추가적인 자본확충시 KT가 직접 실탄을 대며 우군역할을 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 때 KT는 BC카드와 동일인으로 묶여 6개월마다 한번씩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게 되는데 이번 개정안 처리로 공정거래법 위반 부담은 한결 덜어낼 수 있다.
네이버·넷마블·넥슨 등 국내 내로라하는 ICT 기업들의 진입문턱도 낮아질 전망이다. 현재 네이버는 국내의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한국이 아닌 일본·대만·태국·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만 인터넷은행 사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