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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첨병들]목소리는 알고 있다

  • 2020.09.04(금) 09:45

기업은행, 국내 첫 음성인증 도입…고객센터서 활용
목소리로 본인확인, 이체·해지 등 금융거래 가능해져

"본인 확인을 위해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아파트 몇 동 몇 호인가요? 핸드폰 번호 말씀해 주시겠어요?"

콜센터에 전화하면 으레 듣게 되는 이 말이 더는 필요 없게 됐다. 기업은행이 목소리만으로 본인 여부를 판별하는 음성 본인확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인인증이 완료된다.

그동안은 몇 분을 기다려 어렵게 상담원이 연결됐어도 본인확인이라는,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묻는 건지 알 수 없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은행은 더 까다로웠다. 잔액이라도 조회하려면 주민번호,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을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번거로운 인증절차를 거치다 보니 통화가 고울 리 없다. 고객 음성에는 첫마디부터 짜증이 묻어난다. 게다가 콜센터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제한돼 있다.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아무런 확인 없이 금융정보를 술술 얘기해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상담원도 계좌이체, 예적금 가입과 해지 등은 지점을 이용하도록 권유할 수밖에 없다.

IBK기업은행은 국내 처음으로 목소리로 본인확인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음성인증을 제안해 도입한 강신우 고객상담기획팀 대리를 만났다.

이런 불편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강신우 IBK기업은행 고객상담기획팀 대리는 2년 전 음성인증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해외 대형은행들 사이에 활용되던 방식이다. 국내에선 지문·홍채·안면 등 물리적 실체가 있는 생체정보를 활용해 인증을 하는 분야는 관심을 받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음성을 활용해 인증하는 방식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음성인증은 지문인증과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비대면 업무를 처리하는 콜센터에 적합한 방식이죠. 국내에는 쓰이지 않는 방식이라 해외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그 나라 음성인증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억양이나 빠르기, 신체구조 등에 따라 여러 특징을 보인다. 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한 뒤 고객이 전화할 때마다 대조해 본인 여부를 판별하는 게 음성인증이다. 목소리가 공인인증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15초 만에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인증 시스템을 갖췄다.

목소리를 통한 본인인증이 가능해지면서 콜센터의 역할도 확대됐다. 기존에는 상담원 통화 시 계좌조회 등 단순 업무만 가능했지만 음성인증 도입 이후에는 계좌이체, 예적금 가입·해지, 한도계좌 해제 등 돈이 오고가는 거래도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지점이 부족한 지방이나 모바일뱅킹과 인터넷뱅킹에 서툰 중장년층의 금융거래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만 19세 이상 성인 26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50대 가운데 모바일뱅킹(일반은행 기준)을 이용하는 비율은 51.6%로 나타났다. 60대는 32.2%, 70대 이상이 8.9%에 불과했다. 50대 이상 연령층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지점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강 대리는 "젊은 층 사이에선 모바일뱅킹이 이미 보편화됐지만 50대만 넘어가도 그렇지 않다"며 "음성인증 시대가 열려 금융소외계층의 접근성이 한층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인증을 이용하려면 사전에 지점을 방문해 본인의 목소리를 등록해야 한다. 강 대리는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등록하는 걸 막기 위해 최소한의 본인확인 절차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음성인증과 관련한 궁금증을 물었다.

- 음성인증이란 무언인가

▲ 사람마다 비강의 크기와 구조가 다르고 음색과 억양에도 차이가 있다. 목소리는 대략 100개의 특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각각 코드로 만들어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 걸 음성인증이라고 한다. 지문에 있는 융선에 코드를 입혀 지문인증을 하듯 음성인증도 원리는 비슷하다.

- 정확도는 얼마나 되나

▲ 99.99%라고 보면 된다. 생체정보는 장정맥(손바닥에 있는 정맥)·홍채, 지문·음성, 안면인식 순으로 정확도가 높다. 음성은 전화통화가 주업무인 콜센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정확도 높은 생체정보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목소리가 똑같지는 않다. 서비스 시행 전 은행에 재직 중인 쌍둥이 형제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는데 모두 가려냈다. 공사장이나 공연장 등 소음이 심한 곳만 아니라면 정류소나 커피숍처럼 생활소음이 있는 곳에서도 목소리로 본인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 감기에 걸려 쉰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본인 여부를 가려낼 수 있나

▲ 목소리가 쉬었을 땐 생체정보의 손상이 일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한 번 더 인증을 하거나 그래도 실패하면 자금이체 등 돈이 오고가는 거래는 할 수 없게 했다. 인공지능의 민감도를 낮춰 인증률을 높일 순 있지만 그보다는 정확성이 먼저라고 보고 다소 깐깐하게 본인여부를 가려내고 있다.

-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전화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또 누군가 내 목소리를 녹음해 사용하거나 컴퓨터로 변조해 본인인증을 할 수도 있지 않나

▲ 마스크를 써도 인증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정확하게 하려면 마스크를 벗는 게 좋다. 안경 쓰고 홍채인증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변조 역시 크게 걱정할 사안이 아니다. 음성인증 엔진 자체에 스피커 등 기계적인 시도를 가려내는 감지기능이 있다. 테스트 결과 문제없이 작동했다.

- 음성인증 도입 이유는

▲ 기존에는 단순 조회는 상담사 통화로 해결할 수 있지만 계좌이체나 예적금 가입과 해지(3000만원 이하), 한도계좌 해제 등 돈이 오고가거나 본인 확인이 필요한 업무는 무조건 지점에 가야했다. 번호표 끊고 창구에서 처리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간다. 지방에 사는 고객이나 모바일과 인터넷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는 돈을 이체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업무부담이 늘어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 몇 명이 쓰고 있나

▲ 지난 6월5일 도입 이후 하루 500명가량이 가입한다. 현재 1만1000명가량이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일찍 도입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유용한 서비스다.

- 다른 은행들 움직임은 어떤가

▲ HSBC·바클레이즈·JP모간·웰스파고 등 해외 대형은행들은 이미 목소리로 본인인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은행이 최초다. 아무래도 먼저 도입하다보니 다른 은행에서 문의를 해온다. 조만간 국내에서도 음성인증이 확산되리라 본다. 우리는 2018년 1월 아이디어를 냈고 2년여 준비 끝에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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