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A생명이 수백억원의 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AIA생명이 투자한 중국 화룽(華融)자산관리공사(이하 화룽)의 역외 자회사(SPV)에 대해 채무불이행(default)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은 화룽 계열사의 신용등급 변동과 함께 AIA생명의 투자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21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AIA생명의 중국 화룽 관련 투자금액이 총 640억원(5460만 650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룽이 역외 채권 발행을 위해 설립한 SPV인 화룽파이낸스(Huarong Finance)의 회사채 총 12건에 투자했으며, 신용등급은 A+, 금리는 4.6~5.5%, 만기는 2025~2029년이다.
중국 다자생명보험이 대주주로 있는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화룽 관련 투자 내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룽은 1999년 중국 정부가 부실채권 처리를 위해 설립한 중앙국영금융회사다. 중국 재무부가 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부실자산처리, 금융서비스(증권·은행·신탁), 투자 등이며, 2015년 홍콩거래소에 상장했다.
그런데 화룽이 지난해 감사보고서 제출을 미루면서 디폴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화룽은 지난 1일 '관련 거래가 확정되지 않아 2020년 감사보고서 작성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2020년 결산 공표를 연기했다.
화룽은 올해 초 뇌물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라이 샤오민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았던 2009년~ 2018년 기간동안 부실자산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인 S&P, 피치, 무디스는 화륭인터내셔널 등 계열사 채권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향후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한 상태다.
# 화룽 비핵심 자회사 부도 가능성 제기
그러자 지난 16일 중국 금융당국이 별도 성명서를 내고 "화룽의 영업 상황은 정상적이며 유동성도 풍부하다"라고 밝히면서 화룽 자체의 디폴트 우려는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화룽의 비핵심자산(Non-core assets) 매각에 나설 것이란 중국 금융당국의 발표에 주목하고 있다. 화룽의 역외자금 조달 창구이자 역외 채권과 관련해 일종의 보증(Keepwell Deeds)을 제공하고 있는 화룽인터내셔널이 매각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김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화룽이 화룽인터내셔널을 매각한다면 화룽인터내셔널 자회사도 같이 버리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화룽파이낸스는 화룽인터내셔널 아래 소속된 SPV다. 화룽파이낸스가 발행한 회사채에 투자한 AIA생명의 회수 가능 금액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설화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관리된 부도: 화룽 디폴트 A to Z' 보고서를 통해 "해외채권 발행은 주로 화룽인터내셔널 산하 화룽파이낸스를 통해 이뤄지는데, 화룽인터내셔널은 담보를 제공하고 화룽 본사는 보증(Keepwell Deeds)만 제공한다"면서 "보증 계약은 지급보증 계약과 비교해 강도가 약하고 반드시 보장할 의무도 없어 언제든 꼬리 자르기식 리스크가 존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AIA생명 "화룽 투자, 완전 부실 가능성 낮다"
금감원 관계자는 "화룽 관련 회사채가 확실한 디폴트 상황에 있는 건 아니다"면서 "디폴트가 난다면 AIA생명이 손상으로 인식해야겠지만, 아직 그 단계까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디폴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화룽 계열사의 신용등급 변동 및 AIA생명의 관련 투자 현황을 주시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AIA생명 관계자는 완전 부실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화룽은 중국 국유기업인 데다 금리 부분도 충분히 고려해 화룽파이낸스 회사채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화룽 관련 투자를 부실로 단정하는 것은 이르다"라고 말했다.
올해 2월 말 현재 AIA생명의 보험금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은 265.2%로, 화룽 관련 투자를 전액 손실로 처리하더라도 RBC 비율이 7.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쳐 충분히 감내할만 수준이라는 게 보험업계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