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내 은행들의 싱가포르 진출과 거점 확대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동남아 금융허브 중심축이 이동할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출입은행은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을 위한 현지 인허가 절차를 개시했다. 수출입은행은 해외 사무소 24곳과 함께 영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홍콩에 현지법인 4곳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엔 기존 해외 거점이 전무했다.
앞서 국민은행 역시 지난 5월 싱가포르 지점을 설립하기 위해 싱가포르투자청의 예비인가를 획득했다. 국민은행 역시 홍콩에만 지점을 두고 있었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싱가포르에 자산운용사를 설립키로 하고 예비인가를 받았다. 하나금융 계열인 하나은행은 싱가포르에 이미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은행은 39개국에 197개의 해외 점포를 두고 있으며 이 가운데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만 싱가포르에 지점을 보유 중이다.
아시아 20개국의 은행 해외 점포가 138개에 달하며 전체 비중의 70%를 넘어섰지만 중국(16곳)과 홍콩(10곳)을 비롯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신남방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만 해도 코로나19 여파에도 9개의 해외 점포가 신설된 가운데 미얀마와 캄보디아, 베트남 등 신남방 국가에 집중됐다.
뒤늦게 주요 금융사들이 싱가포르에 진출하거나 거점을 확대하는 이유는 아시아 금융허브의 무게 중심이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간 동남아 지역 진출의 경우 성장성이 높은 국가 위주로 이뤄지면서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 최근 금융중심지로서 홍콩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싱가포르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홍콩은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금융허브였지만 중국에 의해 홍콩의 자치권이 후퇴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자본이 이탈하고 있다. 그러면서 행정절차가 투명한 데다 간편한 조세체계와 영어 공용화 등의 매력을 가진 싱가포르가 제2의 홍콩으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최고 17%로 홍콩(16.5%)과 비슷해 경영 환경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무역과 함께 금융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동남아시아 핀테크 업체의 약 40%가 위치하며 핵심지역으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은행이 앞서 싱가포르에서 리테일이 아닌 홀세일 은행 라이선스를 통해 지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금융 또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싱가포르 자산운용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확장을 위한 아시아 핵심시장을 확보하고 글로벌 비즈니스 주요 거점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역시 2004년 출범 후 처음으로 세우는 해외 거점을 싱가포르로 낙점했고 사무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주금공은 최근 탄력을 받고 있는 해외 기관 투자 유치와 국제 협력 강화 등을 위해 싱가포르를 택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홍콩이 금융허브로서 역할을 지속하겠지만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면서 금융사들로서는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하는 한편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