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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급증한 가계대출, 어떤 숫자가 진짜일까

  • 2024.08.23(금) 08:10

은행권 가계대출, 두달 새 11조 증가
금융위 "정책대출·대환대출 반영된 탓"
예상 못한 대출 급증이 혼란 야기

가계대출 증가 폭이 가팔라지자 금융당국도 신경이 바짝 곤두선 모습입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정책금융상품과 대환대출 등이 포함돼 숫자가 부풀려졌다는 점을 직접 설명하고 나섰는데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실제 은행이 취급하는 대출은 보이는 것보다 적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일리가 있는 설명이긴 하지만 가계대출이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급증하자 금융당국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어떤 상황인지 들여다볼까요.

두달 새 11조 넘게 늘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6월 5조9000억원, 7월 5조5000억원으로 두달 새 11조4000억원 가량 늘어났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와 주식투자 등으로 13일 기준 4조4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감 추이

올 초만해도 가계대출은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금융 소비자들이 대출받는 이유 중 하나인 내 집 마련 수요가 크게 줄었고,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돈을 갚는 차주들이 늘어났기 때문인데요. 한 때 가계부채는 전달대비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4월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증가 폭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시장도 조금씩 꿈틀대더니 최근에는 집값 상승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는데요. 정부의 8·8대책도 무용지물인 상황입니다.

대출 수요를 막지 못하면서 가계대출에 대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1890조원이 넘는 국내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데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전분기말보다 13조8000억원 증가한 1896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역대 최고 수준이죠.

상황이 이렇자 금융위가 '해명 아닌 해명'에 나섰는데요. 지난 달 상반기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이 작년 말과 비교해 16조2000억원 증가했다는 보도가 쏟아지자 이 중 상당 부분은 정책성 대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5대 은행이 취급한 디딤돌·버팀목·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상품 증가 규모가 9조7000억원이고 이를 제외한 자체 재원 대출 증가액은 6조5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관련기사: '정책상품은 가계대출 아닌가' 금융위·은행 동상이몽?(7월24일)

이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5대 은행 7월 중 주담대 증가액이 7조6000억원으로 집계됐지만 이는 "대환대출 활성화에 따른 증가"라고 강조했는데요. 상대적으로 금리 경쟁력이 높은 5대 은행으로 대출 갈아타기가 이뤄진 것으로 이들 은행의 대출 잔액만 보고 전체 흐름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예상 못한 대출 급증에 '당황'한 결과

이전에는 은행이 집계한 가계대출 잔액 추이에 대해 이같은 설명을 한 적이 없었던 만큼 금융위의 최근 행보에 대해선 '이례적'이라는 게 은행권 시선입니다. 가계부채 우려가 커지자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금융위가 설명한 내용은 일견 타당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정책금융상품은 서민 주거지원이 목적이고, 대환대출 역시 전 금융권을 기준으로 보면 은행만 옮겨진 것으로 '파이'를 키운게 아니라는 겁니다. 숫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한 금융 전문가는 "시중은행으로 이동한 대환대출을 포함해 절대적 양이 늘었다고 보면 안 된다"라며 "정책금융상품 역시 은행 재원으로 취급 후 기금 재원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금융위 설명처럼 해당 대출을 모두 포함해 해석하는 것에 오류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를 감안하더라도 시중에 풀린 유동성 규모가 커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데요. 은행권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합니다. 은행 입장에선 자체 재원으로 공급한 대출에 한해 경영계획을 세우고 관리하는 게 유리하지만 올 초만해도 금융당국은 정책상품 등을 포함한 전체 가계부채를 관리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항목을 분류해 제시하고, 명목 GDP 수준 내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 등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항목이 어떻든 시중에 유동성이 풀리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정책금융상품이야 말로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에 대한 대응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합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낮은 금리로 갈아타면 차주의 대출 여력이 더 생겨나 추가 대출을 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날 수 있는 요인인데 이 부분은 간과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금융당국 예측을 벗어나는 수준이기 때문인데요. 실제 이같은 상황을 예측 못해 스트레스DSR 2단계 도입을 두달 미뤘던 점은 뼈아프게 다가올 테고요.

오는 9월부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제도 강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상 등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을 수 있을지, 잡히지 않는다면 금융당국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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