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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은 참 좋은데" KAI 민영화 공중에 뜬 이유

  • 2016.01.13(수) 11:02

실적·전망 모두 좋아..방산업체 중 최고
높아진 인수대금·오버행 우려 부각..장기화 예상

산업은행이 추진하던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민영화가 암초를 만났다. 유력한 인수 후보가 지분을 매각한 것을 신호탄으로 다른 주주들도 잇따라 지분 매각에 나서는 모습이다. 오랜 기간 KAI 민영화를 추진해왔던 산업은행의 입장에서는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요 주주들의 지분 매각에 대해 향후 가격이 떨어질 것을 기다리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KAI가 국내 방위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회사인 데다 실적과 수주잔고 등 재무상황도 건실해서다. 반면 이번 지분 매각으로 KAI의 민영화는 물건너 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이렇게 괜찮은데…

KAI는 1999년 당시 정부 주도 구조조정에 따라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등 3사의 항공 관련 부문을 통합해 설립됐다. 설립 이후 우리나라의 유일한 항공기 관련 종합업체로 항공우주산업과 관련된 군수 및 민수 사업을 이끌어 왔다. KAI의 사업 부문은 크게 방위산업과 민항기 부품 제작이다.

매출 구조상 방위산업 부문이 67%, 민항기 부품제작이 33%를 차지한다. 특히 다른 업체들에 비해 방위산업 부문에 치중하는 전업(全業)도가 높다. 국내 방산업체들의 평균 방산전업도가 9%, 항공관련 방위산업체들의 평균 전업도가 14%인 것을 감안하면 KAI의 매출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KAI의 작년 가동률도 80% 수준으로 국내 방산업체의 평균 가동률 60%보다 월등히 높다. 실적 측면에서도 이미 KAI는 2분기 연속 두 자릿 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을만큼 건실하다. 해외 수출도 이라크,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의 다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전세계 무기수출의 47%를 KAI가 담당했을 만큼 KAI의 기술력과 영업력도 인정 받은 상태다. 한국 방위산업의 해외 수출이 최초로 2조원을 넘어섰던 지난 2011년도 KAI의 훈련기 수출이 큰 몫을 담당했다.
 

수주잔고는 지난 2013년 10조원을 돌파한 이해 꾸준히 증가해 올해는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항공 관련 분야는 전세계 방위산업 수출입 시장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이라며 "KAI의 사업구조는 방위산업체로서는 상당히 이상적인 형태"라고 평가했다.

◇ 가격·오버행 이슈에 부담

KAI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KAI 매각에 나서기로 한 것은 작년 10월 금융위원회의 결정 때문이다. 금융위는 산업은행에게 출자전환기업 5곳 등 비금융사 91곳 지분을 오는 2018년까지 매각토록 했다. 산업은행은 이때부터 KAI의 매각을 준비했다.

KAI는 방위산업을 영위하는 만큼 국외로 매각이 불가능하다. 인수자가 국내 업체로 제한된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KAI의 주요 주주들과 주주협의회를 구성해 지분 공동 매각을 추진했다. 그 기한은 작년 말까지였다. 하지만 주주협의회는 이 기한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주주별로 KAI 지분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AI의 주주들은 올해부터는 각자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자유롭게 매각할 수 있게 됐다. 가장 먼저 매각에 나선 곳이 한화테크윈이었고 뒤를 이어 DIP홀딩스가 동참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한화테크윈은 그동안 KAI의 유력한 인수자로 꼽혀왔다. 한화그룹은 방위산업을 근간으로 한다. 한화테크윈은 한화와 삼성의 빅딜로 탄생했다.
 
▲ 한화테크윈의 전격적인 KAI 지분 매각은 업계와 시장에 충격을 줬다. 유력한 인수 후보가 지분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KAI 인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시장에서는 한화테크윈이 작년 말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처분해 4400억원을 확보했을 때도 KAI 인수를 위한 실탄 마련으로 봤다. 그러나 한화테크윈에 대한 시장과 업계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산의 지분 매각은 예상됐지만 한화테크윈의 지분 매각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KAI의 주요 주주들이 잇따라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KAI의 몸값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작년 1월 12일 3만9300원이던 KAI의 주가는 1년 뒤인 지난 12일 6만5400원에 장을 마감했다. 1년만에 주가가 66.4% 올랐다. 이에 따라 인수가격(산은 지분 27%)도 당초 1조원대에서 현재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합쳐 약 3조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 중 3조원에 달하는 KAI의 인수대금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럴 바에 주주 공동협약 기한이 만료된 상황에서 좀 더 높은 가격을 받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협약 만료에 따라 주주들의 잇단 지분 매각으로 오버행(overhang : 대규모 매각 대기 물량) 이슈가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지분 매각을 부추긴 원인으로 꼽힌다.

◇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한화테크윈과 DIP홀딩스의 지분 매각으로 KAI 매각에 탄력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딜 자체가 아예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KAI의 실적이 견조한 데다 향후 수익성도 좋은 편이어서다. KAI를 인수한다면 국내 방위산업 분야에서 짧은 시간 내에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한화테크윈이 지분을 매각했다고 해서 KAI 인수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화테크윈은 지분 매각 대금을 활용해 차입금 상환과 항공 엔진 부품 사업부문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항공 엔진 사업 부문 강화를 위해 M&A에 나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테크윈의 지분 매각을 단순히 KAI에 대한 철수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한화테크윈으로서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강화한 뒤 향후 KAI의 가격이 떨어질 경우 인수에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사업 시너지 측면에서도 가장 유리하다"고 밝혔다.
 
▲ 업계에서는 한화테크윈의 지분 매각이 곧 KAI에 대한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KAI의 가격이 떨어질 때를 기다려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KAI의 인수 가격이 3조원에 달하는 만큼 국내 기업 중 KAI 인수에 나설 곳은 드물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한화테크윈이 이번 지분 매각에서 당초 5% 이상을 매각하려 했지만 인수자측의 부담으로 4%만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화테크윈이 보유 지분의 절반이 넘는 물량을 매각하려 했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KAI 인수에 대해 접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느냐"면서 "많이 받을 수 있을 때 매각해 현금화하려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I는 과거에도 두 번의 매각 시도가 있었다. 지난 2012년 8월에는 대한항공이, 같은 해 12월에는 현대중공업만이 참여했다. 하지만 경쟁입찰 원칙에 어긋나 매각이 무산된 바 있다. 현재로서는 대한항공이 사업 시너지 등의 측면에서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재무상태가 좋지 못하다. 작년 3분기말 현재 부채비율이 1050%다. 업종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을 수는 있지만 위험수준이라는 평가다.

현대중공업도 업황 부진과 해양플랜트 부실 등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상태다.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 사업 구조조정은 물론 재무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조원이 넘는 KAI 인수 대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이에 따라 업계와 시장에서는 KAI 매각은 장기화될 것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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