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무버(first mover)'.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산업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아이폰의 애플이 대표적입니다. 꼭 전에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로 창조하는 기업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후발주자였지만 기술과 전략으로 시장을 압도해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한국 기업 가운데도 꽤 있습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역경을 딛고 퍼스트 무버로 자리잡거나, 또 이를 향해 나아가는 'K-퍼스트무버' 기업 사례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정철동 LG이노텍 사장은 오는 10일 대한전자공학회로부터 '제31회 해동기술상'을 받는다. 그는 부품 국산화와 소재·부품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가 이끄는 LG이노텍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은 '카메라모듈' 기술이다. 지금은 대부분 스마트폰에 카메라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되는데 LG이노텍은 이 분야 세계 1위다.
카메라 모듈은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광신호를 이미지 센서를 활용해 RGB(Red·Green·Blue) 전기 신호로 변환, 화면에서 보여주는 부품이다.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에서 카메라가 혁신 기술로 자리매김한 2000년 중반부터다. LG이노텍은 애플 아이폰에 부품 공급을 계기로 2010년 글로벌 시장에서 급격히 부상했다.
후발주자로 시장 경쟁력 찾기
LG이노텍은 1976년 금성정밀공업이란 사명으로 시작, 크고 작은 사업부문 및 다른 LG 계열사와 합병을 통해 2000년 지금의 사명으로 출범했다. 초기만 해도 이동통신 및 디지털TV용 부품 사업을 주력으로 했다.
카메라모듈 시장엔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2003년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에는 국내·외 다수 업체가 카메라 사업에 뛰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국내 시장은 해외 업체들이 제품 공급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LG이노텍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우선 다른 센서 전문업체들과 손을 잡았다. 2003년 6월 휴대폰 카메라모듈 개발에 성공, 9월부터는 광주 공장을 기반으로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
2005년 7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AF(자동초점) 200만 화소 카메라모듈을 개발하며 관련 시장에 처음 뛰어들었다. 4개월 초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거둔 성과이기도 한데 기술 혁신에 있어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 사례다.
이후 2007년 300만 화소, 2008년 500만 화소, 2009년 800만 화소 카메라모듈을 잇달아 선보이며 고화소 카메라 기술 혁신을 이어갔다.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에 힘입어 관련 매출은 크게 확대됐다. 다만 시장 점유율면에서는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 밀려 눈에 띌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업을 본격화한 2006년 카메라모듈의 매출은 1055억원에 달했으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4%(LG이노텍 추정치) 수준이었다.
매출은 꾸준히 늘어 2008년에는 2000억원을 돌파했으나 점유율은 고작 1% 포인트 오른 5%에 불과했다.
애플과 운명적 만남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2010년부터다. 2010년은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면서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본격 경쟁을 시작한 시기다. 당시 제조사들의 '혁신 경쟁'의 한 축을 카메라가 담당했다.
LG이노텍의 모듈 사업은 애플 아이폰 부품 공급을 계기로 각광을 받게 됐다. 2010년 2분기에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4G'에 LG이노텍의 500만 화소 카메라모듈이 장착됐다.
이 때부터 사업 부문의 급격한 성장세가 이뤄진다. 그해 카메라모듈 사업을 담당하던 SnO(센싱·광학) 사업부문의 매출액은 전년 보다 거의 세배나 급증한 7099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4조1035억원)에서 17%를 차지했다.
극적인 성장세가 이어졌다. LG이노텍은 불과 1년 뒤인 2011년에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카메라모듈 업체로 올라섰다.
'손떨방' 대세화 한몫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한 이후에도 LG이노텍은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 경쟁이 격화되자, LG이노텍은 스마트폰 카메라도 DSLR 수준의 스틸 이미지와 동영상 촬영을 구현하도록 제품 개발의 방향을 설정했다. 고화질 구현을 위한 신제품으로 1000만 화소 이상 화소수와 광학식 손 떨림 보정(OIS) 기능이 접목된 초소형 카메라모듈 개발을 추진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초창기인 2013년, LG이노텍은 카메라모듈에 광학식 손 떨림 보정 기능(OIS)을 추가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얇은 5.7mm의 두께를 유지한 1300만 화소 AF 카메라모듈이었다. 이후 OIS는 업계에서 '손떨방(손떨림 방지)'이라는 줄임말이 생길 정도로 보편화 된 기능이 됐다.
■OIS란?
기존 스마트폰은 스판덱스는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전자식 손 떨림 보정 기능(EIS) 기술을 채택했다. EIS는 카메라 내 디지털 보정 방법을 활용하기 때문에 사진 크기나 해상도가 낮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OIS는 광학 방식을 사용한다.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렌즈가 사람 눈처럼 미세하게 움직여 초점을 맞춘다. 흔들리는 방향의 반대로 렌즈를 역이동 시켜 빛의 왜곡을 줄이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손 떨림이나 주변 환경의 흔들림에 대응해 빠르고 정밀하게 초점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술 차별화를 기반으로 LG이노텍의 카메라모듈은 생산 10년 만인 2015년 5월 누적판매량 10억개를 돌파했다. 이는 20mm 카메라모듈을 한 줄로 늘어놓을 경우 서울과 뉴욕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는 게 LG이노텍 측 설명이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카메라모듈이 LG이노텍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졌다. 2011년 카메라모듈(CM)사업부문은 전년 대비 89% 증가한 1조2161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전체 매출의 26.7% 수준이었다. 2013년에는 카메라모듈 사업을 담당하는 광학솔루션 사업부문의 매출액이 2조5231억원으로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전체 매출의 3분의1에 달했다.
2017년에는 광학솔루션부문 매출액이 4조6785억원으로 전체 매출(7조6414억원)의 60%를 넘어섰다. 2018년 매출액 5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작년에는 6조원을 넘어서며 전체 매출 비중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폰 승승장구에…앞길 창창
올해는 기대감이 더 높다. 카메라모듈을 비롯한 주력 제품의 공급이 늘면서 LG이노텍은 사상 첫 연간 매출액 10조원, 영업이익 1조원 돌파에 청신호가 켜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이노텍의 올해 연간 매출액은 14조1450억원, 영업이익은 1조2745억원을 시현할 전망이다.
올해 LG이노텍의 매출 성장은 최근 출시된 애플 아이폰13이 출시 2개월 만에 5000만대 이상 팔린 덕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4분기까지 8000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이노텍은 애플 아이폰13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LG이노텍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성장동력을 한 단계 더했다. 연초 세운 시설 투자 계획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연초 세웠던 광학솔루션 사업의 신규 시설투자 계획을 기존 5478억원에서 8355억원으로 변경했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2년 스마트폰 모델에는 8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고화소 카메라모듈이 탑재될 전망"이라며 "광학솔루션부문은 2022년부터 이익 증가세를 시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