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보호제(농약) 생산전문업체 경농이 지난 26일 '주식소각결정'이라는 제목의 공시 하나를 발표했어요.
자기주식(자사주) 소각(消却)은 말 그대로 주식을 지워 없애버리는 것. 무언가를 태울 때 소각(燒却)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한자어는 다르지만 무언가를 없애버린다는 점은 같아요. 자사주 처분은 주식을 다른 사람 또는 법인에게 팔면서 대가를 받는 데 자사주 소각은 대가 없이 그냥 주식이 사라져요.
# 발행주식의 10% 소각
경농은 기존에 취득했던 자사주 216만9175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어요. 경농의 총 발행주식수(2169만1750주) 대비 10%에 달하는 물량이에요. 하루아침에 회사 주식의 10분의 1이 사라지는 것이죠.
이번 공시줍줍에서 경농의 자사주 소각 공시를 픽(pick)한 건 소각물량이 많기 때문. 보통 자사주 소각을 하는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경농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큰 편인데요. 최근 1년 간 자사주 소각을 진행한 20곳 기업들을 살펴볼까요.
현대모비스는 지난 1월 총 발행주식의 0.3%를 소각한다고 공시했고,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6월 총 발행주식의 6%를 소각한다고 발표했어요. 그나마 높은 것이 풍산홀딩스. 이 회사는 총 발행주식수의 8.6%를 소각한다고 발표했어요. 그래도 경농보다 총 발행주식 대비 자사주 소각주식 비율이 높은 곳은 없죠.
20곳 기업들의 평균 총 발행주식 대비 소각주식비율(3.2%)과 비교해도 경농의 자사주 소각주식 비율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 자사주 대량소각, 이유는?
총 발행주식의 10% 물량을 지워버리기로 한 경농. 그 이유를 직접 물어봤어요.
경농 관계자는 "경농은 1977년 상장을 했는데 당시 상장한 기업들은 자사주나 최대주주 지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 했다"며 "경농도 마찬가지로 총 발행주식수 대비 자기주식 비율이 높았다"고 설명했어요.
참고로 경농은 1957년 경북농약공사로 출발해 1977년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했고, 1982년 지금의 경농으로 회사이름을 바꾼 곳이에요.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경농의 자사주는 382만7100주로 총 발행주식수의 18%에 달하는 물량이에요. 경농 관계자는 "자사주가 많다보니 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수도 적고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자산 가치를 높이는데 활용할 수도 없어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10% 물량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어요.
경농은 28일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자사주 10%를 소각처리 했다는 확인서를 받았어요. 자사주 소각을 완료하면서 경농의 총발행주식은 1952만2575주로 줄었어요. 또 경농이 보유한 자사주는 기존 382만7100주에서 약 3분의 2(216만9175주)가 줄어든 165만7925주(총발행주식의 8.5%)만 남았어요.
# 소각 이후 변화는?
자사주 소각은 기존 주주들에겐 호재성 공시. 자사주 소각으로 총 발행주식수가 줄면서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기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가장 먼저 회계장부상 숫자가 바뀌는데요. 먼저 재무상태표의 자본금 항목부터 볼까요. 자본금은 총 발행주식수×액면가예요. 경농의 자본금은 2169만1750주×500원(액면가)=108억4587만5000원. 주식수가 줄었으니 줄어든 만큼 자본금 액수도 줄어야겠죠.
하지만 이번 경농의 자사주 소각은 이익소각. 즉 자본 항목 내 이익잉여금(기업이 영업활동을 해 벌어들인 돈 중 각종 비용을 빼고 남은 돈)을 줄여 주식을 소각하는 방식이에요. 주식이 줄어든 만큼 회계 상 숫자도 바뀌어야 하는데 자본금을 줄이는 대신 이익잉여금을 줄이는 것이죠.
공시를 보면 "배당가능이익을 재원으로 취득한 자기주식의 소각(이익소각)으로 자본금 감소는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죠.
보통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주주에게 배당을 줄 때 활용하는 재원. 경농은 배당 대신 이익잉여금을 줄이는 이익소각을 통해 주주들의 주식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주주환원정책을 펼친 셈.
*추가 포인트!
헷갈리면 안 되는 것 하나!! 주식소각결정 공시 '11. 기타 투자판단과 관련한 중요사항'을 보면 소각예정금액이 31억9848만4274원이라고 적혀 있죠. 그럼 이 금액만큼 이익잉여금이 줄어드는 것이냐. 정답은 YES.
공시를 보면 소각예정금액이 장부가액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장부가액은 경농이 자사주를 사들일 때 지불한 금액. 소각예정금액을 소각예정주식수로 나누면 경농의 자사주 1주당 장부가액은 1474원이 나와요.
일각에서는 현재 시세를 반영해 경농의 소각금액이 312억원(29일 종가 기준)아니냐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경농의 이번 자사주 소각은 처음 자사주를 사들일 때 금액을 그대로 회계에 반영했기 때문에 시세를 고려해 소각금액을 처리할 이유가 없어요.
따라서 경농의 자사주 소각은 소각예정금액인 약 32억원을 그대로 빼주면 되는데요. 자사주는 기업 회계에서 마이너스 처리하는 항목. 주식을 다른 투자자에게 팔았다면 회사가 돈을 벌지만, 회삿돈으로 자기주식을 직접 사들였기 때문에 마이너스 처리를 하는 것이죠.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고 기업이 직접 사들이면 벌어들이는 이익은 없고 오히려 물건을 팔지 못해 손해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논리.
경농이 자사주를 마이너스 처리한 회계항목은 재무상태표의 기타불입자본인데요. 기타불입자본은 자본금 항목에 속하는 것으로 주식을 팔아서 액면가를 빼고도 남은 이익(주식발행초과금), 자기주식을 팔고 얻은 이익(자기주식처분이익), 자기주식보유금액, 기타 자본항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잉여금 등을 종합한 항목.
기업마다 회계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른데 항목별로 세세하게 표시한곳도 있고 경농처럼 기타불입자본으로 묶어서 일괄 처리하는 사례도 있어요.
경농의 기타불입자본 상세항목을 보면 '자기주식'이라는 항목이 있죠. 작년말 기준으로 마이너스 56억원으로 표기되어 있어요. 이것이 바로 경농이 보유한 자사주의 장부가액(382만7100주×1474원) 총 합계.
이번 자사주 소각으로 자기주식 항목 금액은 마이너스 56억원에서 마이너스 24억원으로 줄어요. 이번에 자기주식 32억원을 없애버리니까 마이너스 금액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죠. 따라서 기타불입자본 총 금액도 32억원이 늘어나겠죠.
기타불입자본이 32억원 늘어나면 자본총계가 커지는데요. 다만 여기서 끝나면 주식은 없애버렸는데 오히려 자본총계는 늘어나는 기이한 구조가 나오죠. 따라서 한가지 작업을 더 해야 한다는 점. 바로 늘어난 약 32억원을 이익잉여금에서 마이너스처리 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이익소각이에요.
결과적으로 주식 소각으로 기타불입자본은 약 32억원 늘고 이익잉여금이 약 32억원 줄면서 자본금과 전체 자본총계는 그대로인 이익소각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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