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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치 아젠다 된 공매도 대책, 실속도 없다 

  • 2022.08.04(목) 07:22

대통령 지적 반나절 만…발표 시점 '의문'
시장 반발 여전한데 기존 대책만 되풀이

동학개미의 '공적'이 된 공매도에 대해 금융당국이 대검찰청까지 총동원해 손질안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그간 시장에서 숱하게 지적한 내용은 빠진 채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안은 대통령의 '지적' 이후 반나절 만에 소집된 긴급회의와 함께 나온 것이어서 공매도 논란이 정치적 아젠다가 됐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와 엄습해오는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 통화와 재정, 금융시장 전반에 빨간불이 켜졌는데 '각론'격인 공매도만 콕 짚은 게 이런 추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달 28일 오전 금융위원회와 대검찰청,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불법 공매도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기존 대책 되풀이격·개미 시각 차…처벌안은 효력도 없어

금융당국이 이번 공매도 손질안에서 강조한 건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과열종목 지정 확대, 크게 두 가지다. 지난달 28일 불법 공매도 근절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의 브리퍼로 나선 이윤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은 "아침에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만나서 이 두 가지에 포커스를 맞췄고 (이게) 우리의 강조점이 되겠다"고 여러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먼저 처벌 강화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기획조사와 신속조사를 강화하고 수사와 처벌도 엄정하게 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조사 강화만 하더라도 지난해 4월 공매도 부분 재개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발표한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당국은 불법 공매도에 과징금과 형사처벌을 도입하고 적발시스템을 구축해 관련 제도개선을 차질없이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발표자료에서 불법 공매도 조사 앞에 새롭게 포함된 문구라면 '즉시', '신속', '조직 확대' 등이다.

수사·처벌 강화의 경우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당장 효력도 없다. 불법 공매도로 부당하게 취득한 이득에 대해서는 몰수와 추징 보전 절차 등으로 환수하겠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지만, 부당이득 산정방식은 아직 법제화조차 돼 있지 않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확대나 개인투자자 공매도 담보비율 완화는 정작 시장의 요구와 온도 차가 매우 크다는 맹점이 있다. 국내 증시가 이미 약세장에 들어선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은 현행 제도의 부분 손질이 아닌 공매도 금지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개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의 공매도 담보비율을 120%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관과 외국인에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개인의 비율 확대가 아닌 나머지 두 투자 주체의 비율 축소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더 상식적이다. 

현재 기관과 외국인의 공매도 담보비율은 105%부터 시작한다. 대차가 어려운 종목일수록 이 비율은 높아지는데 개인은 140%부터다.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에서도 기관과 외국인의 담보비율을 140%로 변경할 것을 주장해 온 것이다.

이틀 전 공식화 내용인데…합동브리핑 서두 "대통령께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발표 시점이다. 앞서 보듯 이번 안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시장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금융당국은 이 시점에 긴급회의를 하고 발표를 해야 했을까.

특히 불법 공매도 조사 강화나 과열 종목 지정 확대, 개인 공매도 담보비율 완화는 이번 안이 발표되기 불과 이틀 전인 지난달 26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자본시장 민간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공식화한 내용과 동일하다. 당시 이들 내용이 알려지자 주식 투자자 커뮤니티 등 시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대책"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이틀 뒤 같은 내용을 당국은 대책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이 최근 기관이나 외국인의 불법 공매도를 따로 적발한 것도 아니다. 수사 중인 불법 공매도 사건 역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당국은 공매도와 주가 하락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그간 '표시 위반' 같은 실수 이외 주가 조작과 관련된 불법 공매도 적발 사례가 전무했던 까닭이다.

결국 이 모든 정황은 당국이 대통령 지시에 서둘렀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새 정부는 '투자자 신뢰회복'을 자본시장 분야 국정과제의 첫번째 목표로 제시할 만큼 강조했지만, 정작 신뢰를 조성할 정책에는 동학개미의 의중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과연 이번 합동브리핑의 첫 구절이 '대통령께서'로 시작했던 건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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