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제재한다는 금융당국의 메시지를 시장에 확실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2018년 제21차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의사록에 실린 한 증선위원의 발언입니다. 이날 증선위는 무차입 공매도를 저지른 골드만삭스의 죗값으로 75억원에 달하는 무거운 벌금을 매겼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이 또 한 번 자본시장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골드만 '75억', 한투 '10억'...차이는
최근 국내 증권사 여러 곳이 불법 공매도를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각돼 여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대형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10억원)과 CLSA증권(6억원), 메리츠증권(1억9500만원), 신한금융투자(7200만원), KB증권(1200만원) 등이 지목됐습니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선 4년 전 골드만삭스 사례와 비교했을 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나왔습니다. 개인과 달리 공매도 상환기간 제한이 없는 외국인, 기관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난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2018년 5월30~31일 이틀간 156종목에 대해 총 899만주에 대해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했는데, 이중 일부 종목에는 결제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더해 2016년 6월30일부터 2018년 6월29일까지 2년간 210개 종목에 대해서는 공매도 순보유 잔고 보고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증선위로부터 74억8800만원의 과태료 철퇴를 맞았습니다. 이번에 가장 높은 과태료를 부과받은 한투증권과 비교해도 7배가 넘습니다.
왜 이 같은 차이가 생겼을까요? 금융당국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당국과 전문가들은 비례원칙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불법 공매도는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무차입 공매도 △공매도를 통한 시세조종 △업틱룰 위반 △공매도 표기 누락 입니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로 미리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는 엄연한 불법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골드만삭스의 경우, 결제일에 이르러서도 주식을 갚지 못하면서 결제 불이행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증선위가 75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린 근거는 세 가지 입니다. ①156종목에 걸친 큰 규모(총 899만 주, 401억원)의 위반인 점 ②다수 종목에 대해 결제불이행이 발생하여 자본시장 질서가 교란되고 투자자 신뢰가 크게 저하된 점 ③무차입 공매도 제한이라는 중대한 자본시장 법규를 위반한 점.
따라서 골드만삭스는 증선위 회의에 참석해 복수의 동일 행위에 대해 법률상 최고한도액인 1억원의 10배를 초과하는 과태료가 과하다는 의견을 소명했음에도 감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지껏 불법공매도로 제재를 받은 사례 중 과태료 감경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골드만삭스가 유일무이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증선위원은 "일벌백계(一罰百戒)가 돼 국내외 기관들에게 분명한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입니다.
한편, 10억원을 부과받은 한투증권의 경우 표기 누락이 문제가 됐습니다. 한투증권은 2017년 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3년3개월간 한국거래소에 주문을 낼 때 공매도 표시를 빼먹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반적인 매도 주문과 구분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투증권은 3년간 총 939종목, 1억4089만주에 대해 표기 위반 실수를 저질렀죠.
기간과 물량이 상당했지만, 행위의 동일성을 인정받아 원칙대로 최고 한도액 10배인 1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습니다. 또 시장조성자 활동 중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해 금액을 20% 깎아줬습니다.
시장조성자로 지정된 증권사는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사전에 지정된 종목에 매수, 매도 주문을 내 활발한 거래를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리하여 한투증권이 최종적으로 납부한 과태료는 8억원입니다.
투자자와의 소통 중요
같은 무차입 공매도라도 다른 처분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올 2월 CLSA증권과 메리츠증권의 경우엔 무차입 공매도로 각각 6억원, 1억9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당국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 증권사의 사례는 주식 입고 일정을 헷갈려 했거나, 전산 시스템 미비로 인한 무차입 공매도였다는 겁니다. 골드만삭스 때와는 달리 결제 불이행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시장조성자 활동 중 일어난 사고였다는 점 역시 감경 사유로 들었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봐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은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도둑질이 같은 형량을 받을 수 없듯 말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설명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처벌 기준에 물음표가 붙는 이유입니다. 당국의 처벌이 합당했다고 평가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단순 표기 누락과 무차입 공매도의 차이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인정했습니다.
우선 신뢰 재건을 위해선 처벌 기준의 적용 잣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금융당국은 1년 전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했습니다. 기존에는 위반 건에 대해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됐지만, 작년 4월부터 시행된 개정안에 따르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3~5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디테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연히 시행 세칙을 갖췄지만 모든 사례를 예상해 미리 기준을 만들어놓기는 어렵다"며 "원칙과 상충되지 않게 세부기준을 만들어 의결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일반 투자자들이 보다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당국이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는 한 '솜방망이 처벌'과 '봐주기 논란' 꼬리표를 떼긴 어려울 것입니다. 대대적인 제도 칼질 보다는 개인투자자들과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