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하면서 늦깎이로 발행어음업 준비를 하고 있는 삼성증권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경쟁사들이 당장 올해부터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기준 8조원을 넘으면 IMA사업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미래에셋증권(이하 작년말 기준 자기자본, 9.9조원)과 한국투자증권(9.3조원) 중에 1호 사업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IMA는 고객 예탁자금을 통합해 기업금융에 투자하고, 고객에게 운용수익을 지급하는 계좌이다. 다만 아직 운영한 사업자는 없는 방치된 제도였다.
증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원금을 보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증권사들이 예금상품을 파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자금을 끌어모아 기업금융에 활용하고,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는 사업이다.
자본금 기준으로는 NH증권(7.4조원), 삼성증권(6.9조원), KB증권(6.3조원)도 가시권에 포함된다. 자본금 기준을 낮춰달라는 업계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범위는 더 넓어질 수도 있다.

초대형IB 중 유일하게 발행어음 못하는 삼성증권
하지만 삼성증권에게 기회는 좀 더 멀리 있다. 금융당국이 기업금융 업무를 2년 단위로 단계를 거쳐 확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3조원 종합금융투자회사(종투사) 지정 후 2년 이후 4조원 기준 발행어음업 인가를 허용한다. 또 발행어음업을 2년 이상 영위한 후에야 8조원 기준의 IMA사업까지 허용하는 방식이다.
삼성증권은 올해 발행어음업에 입성하더라도 2년 후인 2027년에야 IMA에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삼성증권은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국내 초대형IB 중 발행어음 사업을 하지 못하는 유일한 증권사다. 대주주 요건 등의 문제로 인가를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과 함께 2017년 자기자본 4조원 기준의 초대형IB로 지정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은 모두 발행어음 사업이 가능한 단기금융업 인가를 갖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증권업계 최초로 초대형IB지정과 함께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 발행어음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NH투자증권(2018년 5월), KB증권(2019년 5월), 미래에셋증권(2021년 5월)도 차례로 인가를 획득했다.
삼성증권도 2017년 이들 4개사와 같은 시기에 4조원 기준의 초대형IB지정은 됐지만, 금융위로부터 단기금융업 인가를 거절당했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이고,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회장으로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된다.
발행어음사업을 위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려면 재무적 요건뿐만 아니라 내부통제시스템, 건전성, 그리고 대주주 적격성 등의 심사도 통과해야 한다. 특히 형사소송이나 기관의 조사, 검사 등은 적격성 심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한국투자증권 외 나머지 세 곳의 인가 일정이 늦어진 것도 적격성 요건이 영향을 끼쳤다.
NH투자증권은 2017년 당시 너무 많은 채무보증 규모가 발목을 잡았고, KB증권은 현대증권 시절 계열사의 인수와 유상증자에 관여한 문제로 대주주 신용공여금지 규정 위반 기관경고를 받아 인가를 늦게 받았다. 미래에셋증권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몰아주기 의혹 제기로 심사가 중단되면서 4년이 지나서야 인가를 받았다.
삼성증권의 경우 이재용 회장의 재판일정에 영향을 받고 있다. 1심에 이어 지난 2월 2심 법원이 이 회장의 혐의에 전부 무죄선고를 내렸지만 검찰이 즉시 대법원에 항고하면서 최종 판단은 더 미뤄졌다.
삼성증권이 대주주 요건으로 멈춰 있는 사이 발행어음사업은 대형 증권사들의 기업금융 핵심사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4대 증권사의 발행어음 자본조달규모는 40조원이 넘는다. 2024년말 기준 발행어음 잔액은 한국투자증권이 17조3162억원으로 가장 많고, KB증권 10조1305억원, 미래에셋증권 7조4733억원, NH투자증권 6조6066억원 등 다른 증권사들도 조단위 발행규모를 자랑한다.
금융위가 올해 안에 신규 인가를 허용하면 발행어음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메리츠증권(6.3조원), 하나증권(6조원), 신한투자증권(5.5조원), 키움증권(5조원)도 이미 발행어음 시장에 뛰어 들 수 있는 외형 조건(자기자본 4조원)을 갖췄다.올해 발행어음업 입성 가능...2년뒤 IMA까지?
업계에서는 지난 2021년 개정된 금융투자업 규정을 들어 삼성증권의 발행어음업 입성이 당장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2021년 12월 9일에 신설된 금융투자업규정에는 형사소송이나 금융당국 및 검찰의 조사, 검사 등의 진행경과를 고려해 금융위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단된 인가 심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사를 중단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지만, 인가 신청 역시 같은 기준에서 허용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도 지난 9일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 발표 당시 발행어음 인가 관련한 질문에 "삼성증권 스스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해소됐는지 판단해서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가 신청은 삼성증권에도 열려 있음을 언급했다.
이 회장의 2심 무죄판결 이후 삼성증권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적극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발행어음업 인가 신청과 관련해 내부 회의체가 운영중"이라며 "인가에 앞서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 발행어음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스터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증권이 발행어음사업에 뛰어 든다면 연간 1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0일 증권업 분석 리포트를 통해 "기존 발행어음 영위 4개사의 평균 한도소진율(62%)과 예상 스프레드 1.5%p를 적용하면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관련 예상 연수익은 1300억원"이라며 "현행 법적 여건으로도 삼성증권은 발행어음 인허가 작업 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그룹의 대관능력을 바탕으로 삼성증권이 이미 이런 환경적 변화에 대한 검토를 끝냈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삼성증권은 앞서 지난 2월 2024년 4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IMA 등을 고려해 (주주환원을) 점진적으로 상향 추진하겠다"며 "자기자본 8조원 달성 이후 적극 확대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자기자본 8조원 달성을 위해 주주환원을 잠시 보류하고, IMA 진입 후 적극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박종문 삼성증권 대표의 임기는 2027년 3월까지다. 올해 발행어음업에 입성한 후 2년 뒤인 2027년에 IMA인가를 신청하는 청사진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