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포털 네이버가 인터넷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율주행차, 로봇, 인공지능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초에는 연구개발(R&D) 조직을 떼어내 별도 법인을 설립했고, 최근 전문 경영인에서 기술 전문가로 '세대교체'를 이루는 등 테크(tech)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조직 및 경영틀을 재편했다. '인터넷 서비스'라는 껍질을 깨고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개선에 나선 네이버의 행보는 세계 최대 ICT기업 구글(현 알파벳)의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제2의 창업'을 각오로 미래에서 먹거리를 찾고 있는 네이버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편집자]
"향후 3년 뒤 네이버가 어떻게 돼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회사들과의 싸움이 쉽지 않겠지만, 절박함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 28일 첫 공식석상에서 강조한 말이다. 지금까진 포털 검색서비스로 성공했지만, 지속성장을 위해선 기술플랫폼으로 빠르게 변신해 구글 등 경쟁사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네이버는 변신의 키워드를 네이버랩스에서 찾고 있다. 네이버랩스는 네이버 내에서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등 주로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을 맡아온 조직이다. 지난 1월2일 별도법인으로 떨어져 나왔다.
네이버의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송창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올해 초 '네이버랩스(Naver Labs)' 신설법인 출범에 맞춰 구성원에게 "우리는 이제 미지의 세계로, 도전적인 여행을 떠나려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회사의 미래기술 개발을 맡게된 송 CTO가 구성원에게 강조한 메시지는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Never stop dreaming)”다. 지난 18년간 인터넷 '한 길'을 걸어온 네이버로서는 여태껏 다루지 못한 낯선 영역에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메시지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난다.
네이버랩스가 연구 중인 자율주행차 시연 유튜브 동영상.
◇ 네이버랩스, 태생부터 차세대 기술 전담
네이버랩스는 인터넷에서 기술 플랫폼으로 사업 전환을 내건 네이버가 신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수색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원래 네이버는 2010년대 초까지 주력인 검색과 포털·게임 사업을 큰 축으로 연구개발 조직을 두었다가 첨단 기술을 담당하던 조직을 떼어내 2013년 CEO 직속의 네이버랩스를 꾸렸다.
네이버랩스는 원래부터 생소한 영역을 다뤄왔다. 지난 2006년에 인쇄된 문자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문자인식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2010년 들어선 일본어 문자인식이나 음악검색·이미지 내 사람 얼굴과 머리 모양 검출·음성인식 등을 연구했다.
지금이야 네이버를 비롯한 대부분 인터넷 서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이나 당시로서는 5~10년을 멀리 내다봐야 하는 것들이다. 현재 네이버 사이트 각각의 섹션을 비롯해 모바일 메신저 '라인'과 동영상 인맥구축서비스(SNS) '스노우' 등에 스며든 원천 기술이기도 하다.
아울러 네이버랩스는 지난 2014년에 인공지능의 핵심 분야라 할 기계학습을 포함해 웹브라우저 '웨일'과 번역앱 '파파고'의 기반 기술들을 차근차근 개발해왔다. 라인에 이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기대를 모으는 스노우·웨일·파파고 등의 핵심 기술 상당수가 네이버랩스 작품인 셈이다.
◇ 차세대 기술에 미래 걸다
네이버랩스가 외부에 많이 알려진 것은 2015년에 열린 네이버 개발자 컨퍼런스 '데뷰(DEVIEW)'였다. 이 행사에서 회사는 로보틱스와 스마트홈·모빌리티 연구 개발을 위해 5년간 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검색과 SNS, 모바일 등 소프트웨어(SW)에 강점을 가진 네이버가 로봇 등 첨단 기술로 눈을 돌리겠다고 공언한 것이라 크게 주목 받았다.
아울러 지난해 행사에선 네이버랩스의 별도 법인 출범 계획과 함께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연구의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해 더욱 관심을 모았다.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미래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 네이버랩스는 지난 2월 국토부로부터 자율주행차 임시 운행을 허가 받았다. 이번 임시운행 허가는 국내 IT 업계 최초 사례다. |
이후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한 네이버의 '기술 행보'에 가속이 붙고 있다. 올 2월에는 국토부에서 부여하는 자율주행차 임시운행을 허가받았는데 국내 IT 업계 가운데 처음이다.
지난달에는 로보틱스와 자율주행·인공지능·증강현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채용 모집에 나섰고, 최근에는 국내 최고 수준의 3D 전문기술 기업인 에피폴라를 인수하면서 가상현실, 홀로그램 기술력을 확충했다. 오는 30일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서울 모터쇼'에서 연구 단계인 자율주행 기술을 처음 공개할 계획이다.
◇ 구글식 성장 넘어선다
검색포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네이버가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등에 공을 들이는 모습은 세계최대 검색업체 구글의 행보와 비슷하다.
구글은 웹검색 서비스를 발판으로 동영상(유튜브)과 모바일 운영체제(안드로이드) 영역을 장악하면서 세계적인 정보기술 '공룡'으로 커가고 있다. 현재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인공지능·스마트홈·헬스케어 등 미래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15년 '알파벳'이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알파벳 산하에 각 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두는 구조로 조직을 개편했다. 아울러 내부 연구소인 '구글 엑스(X)'를 독립시켜 알파벳 자회사로 편입했다.
원래 구글 엑스는 오지에 풍선을 띄워 무선인터넷(와이파이)을 공급한다든지 드론으로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등의 독특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비밀연구소다. 스마트 안경인 '구글글래스'와 구글의 무인차 연구를 담당하기도 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울러 먼 미래 기술을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구글 엑스는 네이버랩스와 비슷한 면이 많다.
검색으로 출발한 네이버가 구글처럼 자율주행이나 로봇 분야를 아우르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대규모 데이터에 기반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하드웨어와 융합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 및 서비스를 시도하기 위해서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차나 로봇, 심지어 거실 스피커에도 네이버 서비스를 끊김없이 제공하겠다는 야심이 담겨있다. 일본 자회사 라인주식회사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Clova)'는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네이버는 지난 17일 주주총회에 이사회를 개최, 외부 인사이자 국내 대표 기술 전문가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을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또한 김상헌 대표 후임으로 IT 전문가인 한성숙 대표를 새로 선임하는 등 핵심 경영진의 완벽한 세대교체를 통해 기술 기업으로의 도약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