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저물고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한마디로 지각변동의 날들을 보냈다. 세계 최초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와 같은 영광의 날도 있었고,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등장하며 혁신성장에 대한 우려의 날도 있었다. 유료방송업계는 글로벌 OTT의 국내 시장 잠식과 함께 인수·합병(M&A)의 소용돌이에 빠졌고, 게임 업계 역시 '맏형' 넥슨이 매각을 시도하는 등 지각변동이 화제였다. 올해 ICT 업계를 관통한 이슈를 돌아보고 내년을 전망해본다. [편집자]
▲문재인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당시 초고속 인터넷망 필요성과 노무현 대통령 당시 온라인게임 산업육성을 조언했었다.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초고속 인터넷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 세계 1위 국가로 성장해 기쁘다.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다."
지난 7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난 이후 국내엔 다시 한번 AI 바람이 불었다. 2016년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 이후 다시금 AI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정부, AI 국가 전략 발표
올해 정부가 보여준 AI 의지는 확실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AI 강국을 비전으로 내세웠으며 전 부처가 함께 AI 국가전략을 구상했다. AI 국가를 위해 정부 조직 중 일부도 AI 중심으로 탈바꿈할 계획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28일 네이버 개발자컨퍼런스 '데뷰 2019'에 참석해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통해 "정부 스스로 인공지능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정부는 과힉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전 부처가 참여해 마련한 '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경제효과 최대 455조원 창출, 2030년까지 삶의 질 세계 10위 도약을 내다봤다. 전 산업에 AI를 도입하고 모든 국민이 AI 교육을 받으며 디지털 정부로 대전환해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또 정부의 IT 관련 조직도 AI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AI에 중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원회로 만들고 SW정책연구소도 AI정책연구소로 변신을 꾀한다.
◇"美·中 AI 패권 뛰어넘자" 손잡는 기업들
AI의 중요성은 정부보다도 기업에서 먼저 감지했다. AI 기술과 서비스가 국경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향상해 온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연맹을 맺거나 협력을 통해 풀어나가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네이버는 AI 영토 확장의 첫 단계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AI 연구벨트'를 구축한다. 글로벌 기술 네트워크를 통해 미·중 기술 패권에 맞설 새로운 글로벌 흐름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AI 연구벨트는 한국과 일본, 프랑스,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네이버 중심의 기술 연구 네트워크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장기적으로 이 연구벨트가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엄청난 기술력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흐름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청사진을 그려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네이버는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 자회사 Z홀딩스(야후재팬 서비스) 경영 통합으로 AI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양사의 통합 이후 방향성에 대해 네이버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는 AI 기반의 새로운 기술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SK텔레콤과 카카오도 AI 기술 확보를 위해 지난 10월 손을 잡았다. 양사는 3000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하고 통신·커머스·디지털콘텐츠·미래 ICT 등 4대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추진키로 했다. SK텔레콤의 고객기반, 언어 인식 등의 기술과 카카오의 포털, 콘텐츠 등 서비스 역량을 결합하고 AI 관련 선행 연구 등 기술 영역에서도 연구개발을 협력한다는 구상이다.
◇통신·게임사도 AI 실력 자랑
IT 기업들의 AI 선언과 관련 발표도 이어졌다. KT는 지난 10월 'AI 컴퍼니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서든 KT AI가 자리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향후 4년간 3000억원을 투자하고 AI 전문 인력 1000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필재 KT 부사장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라성 같은 세계적 기업도 AI를 꾸준히 얘기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도 AI의 국가차원 전략을 준비하겠다고 언급했다"며 "이처럼 AI가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고있는 시점이라면 이는 시대적 소명이자 KT가 다시 한번 세계로 향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게임사들도 AI 기술력을 뽐내는 한해였다. 넥슨의 AI와 빅데이터를 연구하는 인텔리전스랩스는 넥슨의 특별 기획 전시회에 참여해 실제 적용 기술을 예술적 작품으로 녹여냈다. 넥슨은 욕설 탐지 프로그램과 유저들의 매치메이킹, 리얼 타임 자동 월핵 탐지 시스템 등에 AI 기술을 적용한다.
엔씨소프트는 'NC AI 미디어 토크' 행사를 통해 자사의 AI 연구 개발 상황을 소개했다. 게임뿐 아니라 자연어처리 등에서도 AI 기반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넷마블은 올해 AI 기술을 사업 전 영역으로 확대했다. 넷마블의 게임 개발과 플레이를 돕는 AI 기술인 '마젤란'을 올해 하반기 출시 게임부터 본격 적용했으며 지난 8월 AI 기반의 차세대 그래픽 기술도 발표한 바 있다.
게임사 중 올해 가장 눈에 띄는 AI 이슈는 이달에 진행된 NHN의 바둑 AI인 '한돌'과 이세돌 9단의 대결이었다. 한돌은 NHN이 1999년부터 '한게임 바둑' 게임을 통해 축적한 바둑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 및 서비스하는 AI 바둑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7년 12월 NHN은 한돌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한돌은 중국 바둑 AI인 '절예'와 비교하면 아직 부족하지 않나 싶다"고 평가해 국내 AI 기술에 대한 아쉬움이 남은 대결이었다.
◇2020년, 정부의 AI 국가전략 실행 주목
AI는 하루아침에 이뤄지거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도 기업들의 AI 기술개발은 지속되고 다양한 성과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월에 있을 CES 2020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AI 기반 가전 및 전자제품, 로보틱스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업계와 인터넷업계는 AI 스피커를 필두로 다양한 서비스에 AI가 적용되도록 확대하고 IoT를 중심으로 집안 내 생활에 AI가 스며들 수 있도록 구축할 계획이다. 또 국내 기업들은 미국이나 중국이 따라잡기 어려운 AI 특수 분야를 찾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네이버는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서비스에 AI를 적용하고 엔씨소프트는 게임AI는 구글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관건은 정부의 AI 국가전략 실행이다. 이달 AI 국가전략 계획을 완료하고 발표한 정부는 내년부터 실행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정부는 내년부터 광주 AI 집적단지 조성을 시작하고 전국 단위의 'AI 거점화 전략'을 수립한다. 또 AI 분야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로드맵을 수립하고 AI 시대 기본 이념과 원칙, 역기능 방지 시책 등 기본 법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AI 투자펀드 자금을 조성하고 AI 올림픽도 개최한다. 이외에도 연구개발 투자와 AI 교육, 디지털 정부 전환, 일자리 안전망 구축 등의 분야에도 내년 과제가 쌓여있다.
데이터3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 본회의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데이터 활용이 내년에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