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저물고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한마디로 지각변동의 날들을 보냈다. 세계 최초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와 같은 영광의 날도 있었고,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등장하며 혁신성장에 대한 우려의 날도 있었다. 유료방송업계는 글로벌 OTT의 국내 시장 잠식과 함께 인수·합병(M&A)의 소용돌이에 빠졌고, 게임 업계 역시 맏형 넥슨이 매각을 시도하는 등 ICT 전반의 지각변동이 화제였다. 이에 비즈니스워치는 올해 ICT 업계를 관통한 이슈를 돌아보고 내년을 전망해보기로 했다. [편집자]
게임 업계는 올해 시작과 동시에 혼란스런 한해를 보냈다. 넥슨 매각 시도 때문이다.
업계 맏형이 떠난다는 상징성과 매각희망가격이 10조원이 넘는다는 규모 측면에서 화제가 됐으나 없던 일로 끝났다.
이같은 움직임은 게임 업계의 위기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재도약의 기회를 모색하는 시도로 평가된다.
넥슨을 세계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드는데 뒷받침이 되는 여러 방안을 놓고 숙고 중에 있습니다.
올해 초 김정주 넥슨 창업자(넥슨 지주사 NXC 대표)가 NXC 지분 전량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보도가 나놨다. 지배구조상 NXC를 인수하면 사실상 넥슨 전체를 사는 셈이 된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그가 직접 밝힌 입장은 "여러 방안을 놓고 숙고중"이란 애매한 설명이었다. 당시 업계는 김 대표가 넥슨의 매각을 시도하는 것 자체는 사실인 것으로 풀이했다.
시간은 흘렀다. 6월 말 매각이 불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넥슨 매각은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같은 매각 시도와 무위로 돌아간 결말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설명이 나오지 않아 수많은 추측을 남겼다.
특히 수면 위로 오른 인수 희망 사업자들의 면면을 볼 때 넥슨 매각은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분석도 나오게 했다.
대표적인 예는 카카오와 넷마블의 넥슨 인수 도전이다. 카카오는 게임 부문 자회사 카카오게임즈의 상장을 보류중인 상황이었고, 넷마블은 넥슨-엔씨소프트 경영권 분쟁 당시 엔씨 편에 섰던 회사였다.
이들의 넥슨 인수 시도에 대해선 세 가지 측면에서 우려가 나왔다. 우선 자금 조달 능력이었다. 인수대금이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넥슨을 삼킬 만큼 돈 있는 회사들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작년 초 카카오는 약 10억달러(1조원) 규모의 해외주식예탁증서(GDR·Global Depositary Receipts) 발행을 완료해 대형 M&A 목적 자금을 준비하고 있었다.
넷마블의 경우 자체 현금과 재무적 투자자, 차입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양사 모두 10조원이 없는 회사들이다.
실제로 넥슨 인수에 뛰어든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넥슨은 카카오와 넷마블 모두에게 자금조달계획을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했으나, 그중 현실성 없는 계획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이들은 M&A 자금을 떠나 기존 사업에 여유가 많은 회사들이 아니었다. 2018년 연간 실적만 봐도 카카오와 넷마블 모두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카카오는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56%나 줄어든 729억원을 기록했고, 넷마블의 영업이익도 2417억원으로 전년보다 52.6% 감소했다.
넷마블과 카카오의 뒤에는 중국 텐센트가 있다는 점도 부정적 분석을 나오게 했다. 국내 최고의 게임사가 중국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의 사실상 2대 주주는 중국 텐센트 투자회사 '맥시모'(6.7%)이며, 넷마블의 주요 주주 역시 텐센트의 자회사 한 리버 인베스트먼트(17.7%)라는 점에서다.
이밖에 외국 사모펀드들이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다른 기업들도 거론됐으나, 결과적으로 가격 측면 등에서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진다.
왜 게임 업계를 떠나려고 했을까? 25년이나 지나서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이야기는 '25년 전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대표가 왜 지금 게임 업계를 떠나려고 했는가'와 같은 의문이다.
넥슨은 그간 메이플스토리(위젯), 던전앤파이터(네오플), 서든어택(게임하이, 현 넥슨지티) 등 현재의 스테디셀러이자 주력 게임을 개발한 회사를 인수하며 쑥쑥 컸다. 특히 연간 실적을 보면 이 회사를 따라갈 곳은 게임업계에서 찾을 수 없다. 넥슨의 작년 영업이익만 1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국내 게임 업계를 보면 유명 게임 타이틀의 IP(지식재산권)을 재탕한 모바일 게임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이들이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이다. 넥슨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듀랑고'와 같은 신규 IP를 출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여전히 던파 등 10살이 훌쩍 넘은 오래된 작품들이 주요 수입원이다. 위험이 크고 역동성은 부족한 시장으로 지적된다는 얘기다.
물론 김정주 대표의 설명대로 매각은 넥슨을 세계적 레벨의 게임 기업으로 더욱 성장시키겠다는 목표의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위로 돌아간 상황이다.
넥슨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기존에 계획했던 'V4' 등 게임 신작 출시 외에 인적 변화가 감지된다. 넥슨은 현재 자사의 가장 대표적인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를 외부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그의 회사에 350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도 단행했다.
이것만으로 넥슨의 향후 행보를 가늠하긴 어렵다. 김정주 대표는 매각설이 나왔을 때 "방안이 구체적으로 정돈되는 대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별다른 추가 설명이 없다. 한번은 공식석상에 나타나 넥슨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말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