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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그룹에 어른거리는 라데팡스의 그림자

  • 2024.07.26(금) 06:00

형제가 추진한 KKR 1조유치 무산 가능성
"라데팡스, 신 회장 설득…공동경영 조율"

라데팡스파트너스의 그림자가 한미그룹에 또다시 드리우고 있다. 라데팡스는 모녀(송영숙·임주현)의 자문사로 연초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라데팡스는 최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로서 집단경영의 중심에 서는 과정을 물밑 조율하며 영향력을 다시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임종윤·임종훈 형제는 지난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승리한 후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1조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추진해왔다. 형제는 경영권을 보장받고 KKR은 연구개발(R&D) 분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기업가치를 키운 후 엑시트(투자금 회수)하는 그림이다.

두 형제는 표대결에 앞서 신 회장에게 이 계획을 공유했고 OCI그룹 합병안보다 실익이 크겠다고 판단한 신 회장은 긴 침묵을 깨고 표대결을 사흘여 앞두고 형제 측을 지지했다. 당시 형제는 신 회장에게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가 KKR을 선택한 이유는 국내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장기간에 걸쳐 기업가치를 올린 선례가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KKR은 지난 2009년 오비맥주를 18억달러(2조3000억원)에 인수해 5년 만에 기업가치를 투자금의 약 3배에 달하는 58억달러(6조1600억원)로 키운 바 있다. 당시 KKR은 생산공장을 증설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투자로 오비맥주를 국내 1위로 올라서게 했다.

KKR의 투자유치를 앞두고 글로벌 컨설팅사의 실사를 받는 등 순탄하게 흘러가던 형제의 계획은 신 회장과 모녀 사이를 중재한 라데팡스의 행보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라데팡스가 신 회장과 접촉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으면서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며 그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신 회장은 얼마 뒤 모녀와 손을 잡았다. 그는 이달 모녀가 보유한 지주사 주식 약 440만주를 1644억원에 매입해 양측은 40%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이사회 구성 및 의결권 공동행사 △우선 매수권 △동반매각 참여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왼쪽)과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 겸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지난 3월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호텔 신텍스에서 열린 제51기 한미사이언스 정기추추총회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하지만 이번 거래는 모녀의 지분이 신 회장으로 손바뀜한 것 외에 회사 차원에 유입되는 돈이 없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신 회장은 한미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장받을 수 있고, 모녀는 상속세 부담을 덜 수 있게 됐지만 신약개발과 사업확대를 위해 회사에 필요한 '뉴 머니'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 밝은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은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받을 수 없는 KKR과 계약조건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라며 "모녀와 한배를 탔다고는 하지만 국내에 그의 지분을 받아줄 마땅한 매수자가 없을 경우 결국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안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한미의 정체성을 잃어선 안된다"며 해외펀드 매각을 반대해왔던 모녀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어머니인 송 회장은 신 회장과 공동경영하기로 한 뒤 입장문을 내고 "한미 지분을 해외펀드에 매각해 한미의 정체성을 잃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확고한 신념이자 선대 회장의 뜻을 지키는 길"이라며 이를 위해 신 회장과 손을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임종윤·임종훈 형제가 라데팡스의 등장에 반발하면 연초 OCI그룹과 통합추진으로 불거진 경영권 분쟁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형제는 지주사의 이사회를 장악한 가운데 두 공익재단(가현문화재단·임성기재단)의 지분이 형제 측에 묶이면 양측의 지분 차이는 약 3%포인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거래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진 라데팡스는 과거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사례에서 성공한 이력이 많지 않다.

지난 2022년 라데팡스는 아워홈 경영권 분쟁에 참여해 장남과 장녀의 지분을 해외 사모펀드사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보다 앞서 김남규 대표 등 라데팡스 창립멤버들은 KCGI(케이씨지아이) 재직 당시 한진칼의 지분 과반을 확보했으나 조원태 회장이 산업은행을 우호지분으로 끌어오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모녀, 형제, 신 회장 3자간 다툼으로 이전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한미그룹의 기업가치가 오랜 기간 저평가될 수 있다"고 했다.

비즈워치는 24~25일 양일간 라데팡스 측에 지분인수 거래를 제안한 배경 등을 물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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