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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바이오 육성하려면 女경력단절부터 막아야

  • 2025.05.10(토) 08:00

여성 바이오산업 종사자 36.6%
지난 5년간 증가폭 남성 두 배
출산·육아에 5명 중 1명 경력단절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다녀오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최근 대형 기술이전으로 주목받은 업력 10년 안팎의 바이오벤처 A사에 재직 중인 여성 연구원에게 들은 말이다. 위법한 계약이지만 공공연한 관행이라고 그는 말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시가총액 1조원대 중견 바이오벤처 B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쓰려면 대기업으로 가라"는 대표의 노골적인 불만에 육아휴직은 사내에서 꺼낼 수 없는 금기어가 됐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여야 대선주자인 김문수(국민의힘), 이재명(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바이오산업을 국가 미래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이오를 비롯한 첨단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학기술인에 대한 처우 개선 공약도 나란히 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경력단절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학기술인재의 해외 유출은 걱정하면서도 한창 실력을 펼쳐야 할 시기에 출산과 육아로 실험실을 떠나는 여성 연구원들의 현실은 정책 사각지대에 둔 것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여성의 역할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보건산업 고용동향에 따르면 제약바이오산업 종사자 중 여성의 비중은 36.6%로 5년전과 비교해 3.5%포인트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는 자연공학계열 여성 인재의 꾸준한 유입으로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에 따르면 2023년 대학 자연공학계열 여성 입학생 수는 7만4356명으로 10년전과 비교해 8.1%(5579명) 증가했다. 특히 생물학, 생화학 등 자연과학계열에서는 여성 대학생(원) 비율이 53.5%로 남성을 앞질렀다.

하지만 이들이 직장에서 경력을 유지하는 일은 녹록지 않다. 2023년 기준 자연공학계열 기혼 여성 중 17.1%가 출산과 육아, 돌봄 등의 문제로 경력이 단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숫자만 16만8000명에 달한다. 해외 인재 유출을 우려하면서 정작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국내 고급 인재의 이탈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별 제약바이오 기업의 자성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육아휴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운 산업적 특성과 제도적 한계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연구원의 이탈은 기업에 큰 타격이 된다. 대형사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 대체인력을 구하거나 연구 연속성을 유지할 자금적 여력이 있어서다. 실제 매출 기준 5대 제약사(유한양행·녹십자·종근당·한미약품·대웅제약)의 지난해 여성 육아휴직 비율은 평균 75%에 이른다.

문제는 바이오산업 생태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바이오벤처다. 자금 여력이 부족하고 개별 연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육아휴직을 쓰려면 대기업으로 가라"고 한 바이오벤처 대표의 발언은 시대착오적인 인식이라기보다, 육아휴직을 감당하기 어려운 산업 현실을 드러낸 고백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이오업계의 경력단절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여성기술인육성재단이 출산, 육아 휴직으로 인한 연구과제 중단을 막기 위해 과제비를 지원하는 '육아기 연구자 펀드' 등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역할을 맡고 있다.

경력복귀 지원사업을 개시한 2012년 이후 WISET은 11년(2012~2022년)간 경력단절 여성과학인 1415명이 업무에 복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원 규모와 대상이 한정된 만큼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양당 후보는 여느 때보다 여성·젠더 이슈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경력단절 문제 해결에도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국가적 발전과 직결된 과제로 더 큰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은 인구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경력단절 완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과제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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