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며 편견을 깨는 여성 리더들이 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후배 세대가 목표로 삼는 지향점이자 동기가 된다. 이를 통해 이룬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비즈워치는 제약바이오 연구개발, 영업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 리더를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더 훌륭한 신약을 개발하고 싶었다
26일 서울 강서구 마곡본사에서 만난 손미원 엠테라파마 대표(사진)는 지난 30여년간 신약개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더 좋은 약을 만들고 더 큰 세계에 진출하는 것. 그의 명료한 대답에서 블록버스터(국내 연 매출액 100억원 이상) 신약을 개발했던 연구원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손 대표는 국내 천연물 신약개발 분야에서 권위자로 불린다. 그가 천연물 신약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사)보다 한국이 잘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여서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은 천연물 신약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있다. 그가 이끄는 엠테라파마는 자체 AI 기반 연구 플랫폼을 구축해 천연물 신약의 작용기전(약물이 효과를 나타내는 방법)을 규명하고 유망한 약물 데이터를 도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빅파마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이라는 목표에 성큼 다가가고 있다.
천연물 신약에 눈뜨다
손 대표는 서울대 약학박사 출신의 생화학자로 천연물 분야를 전공하진 않았다. 동아에스티(당시 동아제약)에서 근무하며 처음에는 당뇨병 치료제, 항암제 등을 연구했다. 그러다 김원배 전 부회장이 개발한 천연물 기반의 위염치료제 '스티렌'의 작용기전을 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천연물이 가진 잠재력에 처음 눈을 떴다.
그는 천연물 신약개발팀에서 연구하던 중 천연물을 통해 기능성 소화불량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김 부회장에게 치료제 개발을 제안했고 김 부회장은 이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손 대표는 후보물질 발굴, 임상 등 모든 연구과정에 참여했고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약물의 허가를 받아냈다. 이 약물이 2023년 기준 매출액 318억원에 달하는 '모티리톤'이다. 현재는 동아에스티의 전체 제품 중 두 번째로 큰 매출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손 대표는 "처음에는 당뇨, 항암제 등을 연구했는데 당시에는 다국적 기업들이 가진 정보력을 평생 뛰어가도 쫓아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반면 천연물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옛 전통의학으로부터 내려온 정보 등 여러가지 토양이 있었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고 말했다.
그는 "천연물을 연구하며 다양한 성분이 여러 효과(다중성분 다중타깃)를 내는 것을 보며 흥미가 생겼다"며 "내가 연구한 약물(모티리톤)이 시장에 나와 처방전에 적혀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너무나 큰 성취감을 느꼈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AI가 길을 열어주다
모티리톤 허가 이후 손 대표의 커리어는 성공 가도를 걷는 듯했다. 후속 약물로 개발한 천연물 기반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DA-9801'가 2015년 미국 임상 2상 시험에서 우수한 약효와 안전성을 나타내면서다. 이후 손 대표는 기술이전을 논의하기 위해 화이자, 일라이릴리 등 내로라하는 빅파마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빅파마들이 약물의 작용기전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AI를 활용한 연구가 보편화되지 않아 천연물의 복잡한 작용기전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던 손 대표는 2013년부터 10년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국책연구사업인 '유전자동의보감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이 2017년 AI와 빅데이터 모델을 활용해 천연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다.
손 대표는 2020년 엠테라파마를 설립하며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이 만든 기술을 고도화한 자체 천연물 신약 연구플랫폼인 '싸이엠토믹스'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오랜 숙제였던 DA-9801의 작용기전을 규명하고 독자적인 파이프라인을 개발했다.
손 대표는 "빅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을 통해 천연물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하고 유전자 수준에서 천연물의 여러 성분들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며 "10년 걸리던 일을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
엠테라파마는 현재 글로벌 제약사를 대상으로 자체 플랫폼을 통해 작용원리를 규명하고 임상시험을 거친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주요 파이프라인의 기술이전 거래를 마치고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엠테라파마는 동아에스티로부터 DA-9801를 기술도입해 작용기전 규명과 함께 특허등록을 마쳤다. 이미 임상 2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물질로 3상 시험만을 거치면 각국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유럽 등 여러 지역 제약사와 계약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핵심 파이프라인인 파킨슨병 치료 후보물질 'MT-101'은 이보다 큰 빅파마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전임상에서 우수한 악효를 확인했고 미국에서 시행한 임상 1상에서 안전성도 입증했다. 현재 국내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유효성을 확인하는 POC(개념증명) 컨셉의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손 대표는 "MT-101의 작용기전을 명확히 밝혔고 다국적 기업들도 전임상 단계에서 확인한 데이터에 무척 만족했다. 하지만 천연물 신약이다 보니 사람을 대상으로 한 유효성 데이터를 확인하고 싶어해 관련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연물 신약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낸 연구원에서 글로벌 시장진출에 나선 경영인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후배 연구원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어려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던 그는 활짝 웃으며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연구를 하다보면 내가 모르는 결과가 나오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맞닥뜨리게 된다"며 "하지만 이 연구결과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알려줄 수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연구만 하던 게 전부이던 사람이 경영자가 돼 투자자들을 설득하던 과정이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었다"며 "하지만 고민하고 노력하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