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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뭐약]탈모약 이름이 헷갈려…이유가 있다

  • 2024.09.18(수) 10:00

미녹시딜, 나라별로 다른 제품명으로 허가
규제기관은 기존 약과 혼동가능성 등 고려

"로게인이야, 리게인이야?"

탈모인들 사이에서 '미녹시딜' 성분의 약 이름이 헷갈리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혼란스러우신 게 당연한 건지 모릅니다. 이 약물은 미국과 한국에서는 '로게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리게인'으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똑같은 약인데 이름은 달라

의약품의 이름은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연구자들이 약물을 처음 발견할 때 붙이는 '화학명'입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그들만의 이름을 붙입니다. 이를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일반명'입니다.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돼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순간이 오면 브랜드명이 있어야겠죠. 이를 '상품명'이라고 합니다.

탈모약으로 잘 알려진 미녹시딜은 '2,4-디아미노-6-피페리디노 옥시피리미딘-3-옥사이드'라는 어마무시한 화학명을 부르기 쉽게 만든 일반명입니다. 로게인과 리게인은 이 성분의 브랜드명이죠.

미녹시딜은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는 혈압강하제로 개발돼 197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처음 받았습니다. 상품명은 '로니텐'이었죠. 

당시 로니텐을 처방받은 환자들 사이에서 체모가 자라는 부작용(?)이 관찰됐고 로니텐을 녹여 두피에 바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에 원개발사인 업존(현재 화이자)은 로니텐을 탈모치료제로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해 1988년 남성형 탈모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받습니다.

당시 업존은 FDA에 리게인이라는 이름으로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말로 다시 얻는다는 뜻의 '리게인(Regain)'과 표기와 발음이 유사한 제품명(Regaine)이 자칫 환자들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규제당국의 판단기준이 다른 탓으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서는 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됐습니다. 똑같은 제품인데도 미국에서는 로게인, 유럽에선 리게인으로 이름이 달리 붙게 된 이유입니다.

직관적 이름? 때론 은유적으로

미녹시딜 사례에서 봤듯이 규제기관은 잘못 복용하면 환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의약품의 이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FDA의 경우 의약품평가연구센터(CDER)가 의약품의 이름을 직접 검수하고 있는데요. 지난 1년(2022년 10월~2023년 9월) 동안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물질까지 총 443개의 이름을 검토했습니다. 

제약사의 입장은 규제기관과 다릅니다. 최대한 약효를 잘 전달하도록 짓는 것이 마케팅 측면에서 유리하죠. 이를 위해 제약사들은 일반적으로 약물의 이름을 직관적으로 짓는 것을 선호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노바티스의 고혈압약 '로프레소(Lopresor)'가 있습니다. 낮게라는 뜻의 '로우(low)'와 누른다는 의미의 '프레스(Press)'가 더해져 붙은 이름입니다.

/사진=한국화이자제약

은유적으로 이름을 지어 약효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화이자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사진)'는 원기 왕성한이라는 뜻의 '비고러스(vigorous)'와 북미에서 가장 큰 폭포인 '나이아가라(Niagara Falls)'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거센 물줄기를 쏟아내는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힘이 넘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화이자는 공식적으로 제품명의 의미를 밝히지 않았지만 2005년 한 음료회사가 '나이아가라'라는 음료를 출시하자 비아그라와 혼동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적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출시 당시 다소 파격적인 이름으로 화제가 된 약도 있는데요. 바로 덴드레온의 전립선암 치료제 '프로벤지(Provenge)'인데요. 

전립선을 뜻하는 '프로스테이트(Prostate)'와 복수라는 의미의 '벤젠스(Vengeance)'가 더해진 듯한 제품명은 출시 초기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습니다. 출시 1년이 지난 2011년 한 국제학술지에는 '프로벤지:복수심으로 전립선암과 싸울까'라는 이름의 연구논문이 출판되기도 했죠.

영원한 이름은 없다 

외국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우리가 '제니', '다니엘'과 같은 영어이름을 사용하듯이 제약사도 출시국가에 맞춰 다른 제품명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항암제로 국내 최초로 허가를 받은 유한양행의 '렉라자'는 미국에서 조금 더 부르기 쉬운 '라즈클루즈'라는 이름으로 승인을 받았죠.

이미 허가된 약물이라도 기존의 의약품과 이름이 헷갈린다면 규제기관이 뒤늦게 변경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건강과 관련한 문제인 만큼 제약사도 이를 수용해야 할 수밖에 없죠.

한국에서는 우울증 약으로 쓰이는 '브린텔릭스'는 미국에서 현재 '트린텔릭스'로 판매되고 있는데요. 원래 브린텔릭스로 허가를 받았지만 '브릴린타'라는 혈전치료제와 혼동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2016년 FDA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꿀 것을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매년 허가받는 약물이 늘어나고 고령화로 이를 처방받는 환자 수도 증가하면서 약물 이름으로 인한 혼동은 전 세계 규제기관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는 수많은 약물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이름을 지어야 하는 제약업계에게도 마찬가지인 고민이겠죠.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약품의 이름을 지을 때는 효능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동시에 너무 과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며 "기존에 허가된 약물과 발음이나 표기가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등 주의해야 할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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