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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코드 이후]①수탁자책임위, 독립할 수 있나

  • 2018.08.09(목) 16:20

의결권 행사 기존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
활동내역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 확보해야

국민연금이 우여곡절 끝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지만 우려 반 기대 반인 상황이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먼저 도입한 영국·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코드 도입은 말 그대로 첫발을 뗀 것일 뿐이다. 앞으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역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비즈니스워치는 [스튜어드십코드 이후] 기획을 통해 코드 도입 이후의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요 주주활동을 승인·점검토록 해 정치·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강화하겠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지난달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 내놓은 발표자료 문구다.

전임 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삼성물산 합병에 개입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황을 목격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이들은 '정치·경제권력'으로부터 정당한 주주권을 지켜낼 최후의 보루 혹은 방패막이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자책임위)란 기구를 내세웠다.
 
이들의 바람대로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 주주권의 독립성을 지켜낼 보루가 될 수 있을까.
 
◇ '제2의 삼성물산 사태 방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 주주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할 기구로 만드는 조직이다. 기존에 있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이하 의결권전문위)를 확대 개편해 구성한다.
 
위원회의 위상, 구성원의 자격과 임기 등 기본사항은 기존의 의결권전문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탁자책임위와 의결권전문위 모두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기구이자 비상설기구다. 
 
전부 민간위원들로 이뤄지며 보건복지부장관이 위원을 위촉하고 임기는 2년이다. 수탁자책임위는 의결권전문위에 비해 국민연금 가입자대표가 추천하는 위원 수가 늘어난다는 정도만 다르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일각에서는 이러한 구성원 변화를 수탁자책임위의 독립성 확보 근거로 제시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치·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성원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탁자책임위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위의 업무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결정을 요청한 안건 ▲수탁자책임위(주주권행사분과) 위원 3명 이상이 요구한 사항 ▲공개서한 발송 등 공개활동 관련 사안 ▲책임투자 모니터링 및 특정기업에 대한 투자제한·변경 ▲기타 기금운용위원장(보건복지부장관)이 요청한 사안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결정을 요청한 안건 ▲수탁자책임위 위원3명 이상이 요구한 사항은 기존 의결권전문위도 가지고 있던 권한이다. 또 공개서한 발송도 스튜어드십코드 직전 대한항공에 대해 결정한 바 있다. 책임투자 관련 사항만 추가된 것인데 이것만으로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강화'를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연구용역을 맡았던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수탁자책임위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안건을 확대해야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주주제안 안건 ▲사회적 논란이 있는 인수합병(M&A) ▲외부자문기관과 기금운용본부의 판단이 다른 안건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던 삼성물산 합병 건은 사회적 논란이 있었고, 외부자문기관과 기금운용본부의 판단이 달랐던 대표적 안건이다. 

 

결국 삼성물산 합병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수탁자책임위가 주도적으로 내용을 판단·결정하고 결과까지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느냐가 독립성 확보의 관건인 셈이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의 연구용역결과는 이러한 사례가 다시 발생할 경우 결정권을 수탁자책임위에 줘야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과정에서 이러한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안건 확대는 이번 코드 도입 때 통과되지 않아 기존 의결권전문위와 동일한 수준(기금운용본부로부터 위임받은 안건)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 수탁자책임위, 법적 상설기구화도 관건
 
수탁자책임위의 역할 확대와 함께 주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위원회의 상설화 이슈다. 이는 기존의 의결권전문위가 제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비상설기구여서 국민연금의 요청 사안에 대해서만 비정기적으로 판단을 하는 등 제한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한계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수탁자책임위의 지위를 상설기구로 못 박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수탁자책임위를 상설기구로 만드는 문제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연구를 진행한 고려대 산학협력단 보고서도 강조한 내용이다.
 
당시 보고서는 "기존 의결권전문위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한 이유는 안건 심의 회의가 요청이 있을 때만 비정기적으로 열렸기 때문"이라며 "수탁자책임위가 폭넓은 주주활동을 전문성 있게 총괄하기 위해서는 위원회를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근거로 시행령에 수탁자책임위 설치에 관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수탁자책임위가 법적 기구로 인정받아야 위원들이 단순 자문형태가 아닌 상근직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며 "이것이 결국 위원회의 독립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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