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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선 중견 건설사]上 집 지을 땅이 없다

  • 2020.03.04(수) 10:19

페이퍼컴퍼니 무용지물…가뜩이나 경쟁 치열, 택지 확보 비상
정비사업 수주 문턱은 더 높아져…주택사업 위태

수도권 주요 택지에서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며 성장해온 중견 주택 건설사들이 변곡점에 서 있다. 택지 확보를 위해 해오던 계열사 동원 행위가 막혔고, 부동산 규제로 주택사업 환경도 만만찮다. 생존을 위해 신사업도 시도하고 있지만 성장의 밑거름은 역시 주택이다. 중견 건설사들에 닥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과 변화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정부가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용지 공급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중견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그 동안 만연했던 이른 바 '벌떼 입찰'은 앞으로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중견 건설사들은 택지를 확보해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며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이번 조치가 중견 건설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규제 강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지만 앞으로 택지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무게는 더해졌다.

◇ 택지 확보 빨간불

최근 급성장한 호반‧반도‧우미‧중흥‧제일건설 등은 공동주택용지를 확보해 대규모 주택을 공급해왔다. 이들 뿐 아니라 주택 사업을 영위하는 건설사들엔 택지 확보가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중견 건설사들은 다수의 페이퍼컴퍼니(계열사)를 설립해 택지 입찰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당첨 확률을 높여왔다.

정부는 이 같은 행위가 공공택지 공급 질서를 교란한다고 보고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그 동안에는 공급계약일로부터 2년이 경과(2년 이내여도 잔금 완납 시)하면 사유를 불문하고 공급가격 이하 전매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전매행위를 금지한다.

이에 대해 주택 건설업계에서는 실효성 자체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주요 건설사들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당첨을 목적으로 설립했던 계열사들을 상당수 정리하며 대비해왔다.

A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사업 초기에는 여러 계열사를 동원해 택지를 확보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최근에는 이런 방식으로 택지를 확보한 경우가 많지 않고 계열사들도 정리를 하는 등 여러 중견 건설사들이 규제 강화에 대응해 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실제 택지 확보 경쟁률이 어떻게 변화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규제가 강화돼 택지를 확보하기가 이전보다 어려웠다는 점에서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고민은 갈수록 정부가 공급하는 택지는 줄어들고 있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LH에 따르면 2017년 공급된 공동주택용지는 총 47개 필지, 평균 경쟁률은 26대 1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61개 필지를 공급해 공급량이 늘었지만 경쟁률은 77대 1로 더 치열해졌다. 지난해에는 46개 필지로 줄자 평균 경쟁률은 116대 1로 껑충 뛰었다.

B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택지 공급 물량도 이전보다 적고 경쟁률이 워낙 높아 작년에는 공공택지를 한 곳도 확보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특별설계 공모 등을 확대한다고 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대형 건설사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갈수록 택지 확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정비사업 문턱은 더 높아

택지 확보가 어렵다면 주택 정비 사업을 수주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대형 건설사와는 달리 중견 건설사들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분양(주택 공급)을 통한 수익이어서 주택사업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익성이 좋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대형 건설사들이 높은 장벽을 치고 있어 중견 건설사들의 진입이 어렵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시공사를 선정한 정비사업장(재건축‧재개발 등, 컨소시엄 포함) 가운데 중견 건설사가 이름을 올린 경우는 약 10% 수준에 불과했다.

C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다른 중견 건설사가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 조합원을 상대로 영업을 해봤는데 워낙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를 듣고 현실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택지에서 벗어나 정비 사업을 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 결국은 택지 확보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방 소규모 정비사업장이라고 수주가 쉬운 것도 아니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도권 정비 사업이 위축됐고, 대형 건설사들이 그 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지방 정비사업장에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형 건설사들은 300가구 미만 소규모 사업장엔 관심이 없었지만 강화된 규제로 수도권에서 수주 일감이 줄어들다보니 소형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중견 건설사들은 지방에서는 물론 기존에 사업을 영위하던 시장에서도 설자리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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