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가 아크로했다!'
DL이앤씨가 마침내 북가좌6구역을 품에 안으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의 위력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브랜드 경쟁력을 바탕으로 올해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수주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크로에 볕이 들수록 그림자도 밟힌다. 아크로의 활동 범위가 넓어질수록 브랜드 희소성이 떨어지고 일반 브랜드 'e편한세상'의 소외감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북가좌6, 아크로가 아크로했다!
DL이앤씨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 조합이 개최한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633표를 얻어 경쟁사인 롯데건설(475표)을 제치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북가좌6구역은 올 하반기 서울 재건축 수주전에서 가장 치열한 사업장이었다. 총 1970가구 규모에 사업비만 5351억원에 달하는 대단지인 데다 지하철 3개 노선이 지나는 DMC역 초역세권이자 수색증산뉴타운과 가재울뉴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한 '알짜 사업지'여서다.
이에 롯데건설은 수주전 초반부터 강북권에서 처음으로 하이엔드 브랜드인 '르엘'을 들고 나와 조합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관련기사: [집잇슈]북가좌6구역, 비용혜택 'DL' vs 하이엔드브랜드 '롯데'(7월20일)
반면 DL이앤씨는 e편한세상이나 아크로 대신 '드레브 372'라는 새로운 단지명을 내걸었다. '한남더힐'처럼 고유의 단지명을 쓰겠다는 차별화 전략이었지만 그 이면엔 '아크로'라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속내가 깔여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 하이엔드 브랜드 요구가 높자 DL이앤씨도 선택사항으로 제시했던 '아크로' 카드를 꺼내 전면(단지명 '아크로 드레브 372')에 내밀었고, 결국 승기를 거머쥐었다.
DL이앤씨는 입찰 시 제안했던 설계·디자인, 조합원 비용 혜택 등에서도 호응을 얻었으나 업계에선 '아크로' 브랜드가 시공사로 선정되는 '결정적 한 방'이 됐다고 보고 있다.
아크로는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성수 아크로서울포레스트, 흑석 아크로리버하임 등 한강변을 중심으로 고급 주거지에만 적용하던 하이엔드 브랜드로 '고급' 이미지가 강해 선호도가 높다.
현재 아크로 브랜드를 적용한 아파트들은 대부분 일대 시세를 견인하고 있다.
'평당 1억원' 아파트로 유명한 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 지난달에는 전용 84㎡가 37억5000만원(3층)에 거래돼 평당 1억원을 넘어섰다. 비강남권인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는 가장 최근 거래일 기준으로 전용 97㎡가 지난 3월 28억원(7층), 지난 5월 전용 200㎡가 60억원(11층)에 팔렸다.
이같은 브랜드 강세 등에 힘입어 DL이앤씨는 올해 도시정비사업 부분에서 총 2조4960억원의 수주액을 달성했다.
e편한세상 입주자들 '그럼 우리는?'
하지만 '아크로'의 활동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려도 나온다. 올해 들어 아크로 브랜드는 서울 한강변에서 벗어나 강북, 지방까지도 팔을 뻗었다. ▷관련기사: [집잇슈]'우리 아파트도!'…몸살 앓는 '하이엔드 브랜드'(8월10일)
DL이앤씨는 지난 3월 수주한 부산 해운대구 우동1구역 재건축 단지에 비수도권 최초로 아크로 브랜드('아크로 원하이드')를 적용했다. 우동1구역은 부산 대표 부촌인 센텀시티 인근 최대 규모 정비사업장(총 1481가구, 공사비 약 5500억원)이다.
최근엔 지난 2018년 수주한 동작구 노량진8구역 조합의 요구에 따라 e편한세상 대신 아크로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인근 지역 중심으로 '브랜드 교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올 들어서만 중구 신당8구역, 부산 범천4구역, 부산 서금사5구역 등이 아크로 적용을 두고 조합과 갈등하다가 결국 시공사 계약 해지에 이르렀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면 마감재·설계 등이 고급화되면서 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가 되거나 집값이 높아져 선호도가 높다"면서도 "한 아파트의 브랜드를 격상하기 시작하면 인근 지역이나 집값이 비슷하게 오른 수도권 아파트들도 브랜드 교체를 요구할 수 있어서 난감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114가 매년 실시하는 설문조사 중 '건설사 및 브랜드가 가격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는 응답률은 지난해 93.5%에 달할 정도로 집값에 미치는 브랜드 영향력이 높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곳곳에서 브랜드 교체를 요구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하이엔드 브랜드는 희소성이 떨어지고 일반 브랜드는 경쟁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적용 범위가 확대된 건 맞지만 아직 아크로 브랜드를 적용한 아파트 자체가 많지 않다"며 "내부적으로 브랜드 협의를 거쳐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입지에만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