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저는 나이에 비해 군것질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퇴근할 때면 과자·젤리 등 간식을 한가득 사 옵니다. 그중에서도 젤리를 즐겨 먹는데요. 쫄깃한 식감에 달콤함까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가격도 착하죠. 껌과 함께 1000원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간식입니다. 5000원이면 편의점에 가서 거의 웬만한 젤리들을 '플렉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젤리를 즐겨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이구미, 왕꿈틀이 등 모두의 추억 속에 하나쯤은 자리한 간식일 겁니다.
얼마 전 문득 젤리는 어떻게 만들까 궁금했습니다. 포장지 뒷면을 살폈습니다. 원재료에 적힌 돼지고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젤리는 삼겹살이 아니죠. 과일 맛 젤리에 돼지고기라니, 쉽게 수긍이 가는 조합은 아닙니다. 맛과 식감에서 많은 차이가 나니까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젤리를 '동물의 연골'을 빼서 만든다는 이야기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 궁금했습니다. 오리온 등 제과업체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오리온은 마이구미, 왕꿈틀이 만든 '젤리계'의 대부죠. 확인해 보니 '젤리=연골'설은 반은 맞고 반은 달랐습니다. 젤리 제조 과정에 ‘젤라틴’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이 부풀려진 겁니다. 젤라틴은 젤리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내는 물질입니다. 젤리 외에도 마시멜로 등 쫀득한 식감을 가진 식품 다수에서 원료로 씁니다.
젤라틴은 주로 동물의 피부나 힘줄 등에서 추출합니다. '젤리=연골'설이 탄생한 배경이죠. 다만 연골을 젤리의 주원료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젤리 제조에 젤라틴만 사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과업체들은 젤라틴의 주원료로 돼지껍질(돈피:豚皮)를 씁니다. 이 부위에 천연 단백질인 '콜라겐'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이 콜라겐을 물과 함께 일정 온도로 가열하면 젤라틴이 나옵니다. 이후 젤라틴을 건조해 가루로 만듭니다. 여기에 여러 첨가물을 배합하면 젤리가 됩니다.
젤리에는 젤라틴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마이구미의 경우 쫀득한 식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천과 카라기난 등이 들어갑니다. 이는 미역과 같은 해조류에서 추출되는 천연 첨가물입니다. 한천은 툭툭 끊기는 느낌을 살릴 때 씁니다. 카라기난은 탱글탱글함을 더할 때 사용하고요. 오리온 관계자는 "제품 각 특성에 따라 젤라틴, 한천, 카라기난 등 각 원료를 배합해 사용한다"며 "같은 마이구미 제품이라도 종류에 따라 배합률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제과업계가 돈피 젤라틴을 젤리의 주원료로 쓰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원료 특성뿐 아니라 공급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죠. 소와 닭보다도 경제적입니다. 포장지 뒷면에 '돼지고기'가 적혀 있던 이유입니다. 다만 이 같은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곤 합니다. 아무래도 주로 구워서 먹는 돼지껍질이 젤리에 들어간다고 하니 낯설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쫄깃한 식감을 내는 것은 일면 비슷하고 젤라틴의 경우 위생적인 공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최근에는 비건(채식주의자)를 위한 젤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동물성 젤라틴을 빼고 앞서 언급한 한천과 카라기난 등으로만 젤리를 만드는 겁니다. 곤약·효소 젤리 등도 유명하죠. 다만 쫄깃한 식감이 일반 젤리에 비해선 약합니다. 젤리보다는 푸딩에 가깝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비건(채식주의자) 들이 늘며 비건 젤리도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독일의 유명 젤리 회사 하리보도 '비건 젤리'를 선보였죠.
젤라틴은 젤리 등 식품 제조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죠. 대표적으로 젤라틴은 알약의 껍질로도 쓰입니다. 지혈제 제조에서도 없어선 안 될 물질입니다.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공업용 젤라틴도 있죠. 최근에는 젤라틴을 활용한 바이오 플라스틱도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젤라틴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젤리는 그 활용성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이쯤 되면 포장지 뒤의 '돼지고기' 문구가 낯설지 않아 보입니다. 단지 젤리를 만드는 재료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동물 연골이 곧 젤리가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조 과정을 이해한다면 거부감이 한결 줄어들 겁니다.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면 비건 젤리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기술 개발로 식물성 젤라틴의 식감이 동물성 젤라틴을 앞서는 날도 하루빨리 다가오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