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저는 유튜브를 즐겨 봅니다. 퇴근 후 맥주 한 잔에 유튜브를 보는 낙으로 살죠. 혼술 콘텐츠도 자주 보고요. 얼마 전 재미있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연거푸 맥주를 원샷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캔에는 무서운 해골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요. 겉보기에 도수가 꽤 높은 맥주 신제품이겠거니 했습니다. 청소년들로 보이는 친구들도 이를 들이켜 놀랐죠. 영상을 다 시청하고 나서야 '맥주'가 아닌 '생수'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캔의 모습에 속아 맥주로 착각했던 겁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왜 생수를 캔에 담아 팔지 않는 걸까. 보통 일반적인 생수를 떠올리면 투명한 플라스틱 페트병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캔에 담아 파는 건 이온·탄산음료나 커피 정도죠. 국내에서 캔 생수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뭔가 엄청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요. 마시다가 뚜껑을 닫을 수도 없죠. 내부가 보이지 않아 물을 마신다는 느낌도 받기 힘들 겁니다. 이런 이유에선지 인터넷을 찾아봐도 딱히 캔 생수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생수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삼다수에 물어봤습니다. 국내에서 캔 생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환경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500㎖의 페트병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약 20원입니다. 반면 같은 용량의 알루미늄 캔 평균 단가는 대략 200원입니다. 페트병보다 단가가 10배 가량 비싼 셈이죠. 생산량이 늘수록 고정비가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까지 고려하면 이 차이는 더 커집니다.
제조 용기 단가가 오르면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수는 일반 음료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갑자기 가격이 올라 생수 구매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높은 가격을 상쇄할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면 말이죠. 제조 공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난감한 문제입니다. 생수 전문 회사가 페트병을 포기하고 캔을 제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만큼 리스크도 커지고요. 설비를 갖췄다가 제품이 실패하면 해당 시설은 도리어 큰 짐이 됩니다.
실제로 삼다수는 용기 변경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습니다. 삼다수는 2013년 '한라수' 제품을 유리병에 담아 판매했습니다. 당시 '페리에' 같은 유리병 탄산수가 인기를 끌면서 고급화를 추진했던 거죠. 하지만 낮은 수요에 단가도 맞지 않아 시장 안착에 실패했습니다. 큰돈을 들여 설치했던 유리병 생산 라인은 결국 매각 절차를 밟았다고 합니다.
소비자들이 캔 생수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명한 병에 물을 담아 먹는 것을 선호합니다. 불순물이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 믿고 마실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편의성 면에서도 페트병이 캔보다 더 뛰어납니다. 뚜껑을 닫고 열 수 있고요. 무게도 가볍고 탄력성이 좋아 휴대하기도 편하죠. 보관도 용이하고요. 이쯤 되면 국내에서 왜 캔 생수를 찾아보기 힘든지 수긍이 갈 겁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외국에선 왜 캔에 생수를 담아 파는 회사들이 나올까요. 불편하고 비싸기만 해 보이는데 말이죠. 이유는 '친환경'에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입니다. 특히 알루미늄 캔의 재활용률은 페트병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페트병 재활용률은 7% 수준에 그친 반면, 알루미늄 캔은 75%에 이릅니다. 외국의 캔 생수 제조업체들은 이 같은 점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유튜브 영상에 나왔던 생수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제품은 미국의 생수 스타트업 '리퀴드 데스'가 만들었는데요. 이 회사의 슬로건은 'Death to Plastic'으로, '플라스틱에게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극단적이면서도 참신한 콘셉트죠. '봉이 김선달'이라는 평도 있지만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새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90만명이 넘는 셀럽 회사가 됐습니다. 이 때문에 관심이 적은 환경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죠.
국내에서도 캔 생수 제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푸드테크 기업 이그니스가 '캔 워터'를 선보기도 했습니다. 뚜껑을 여닫지 못하는 단점을 개폐형 캔마개로 보완했습니다. 이들 역시 친환경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생수에 알루미늄을 적용하면 플라스틱 감축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이처럼 캔 생수에는 '친환경'이라는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생수 페트병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생수보다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이 더 심한 분야도 많고요. 캔 생수 역시 고급화를 위한 전략일 뿐이라는 비판도 존재하죠. 그럼에도 기업들이 친환경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만안 일일 겁니다. 앞으로 생수 병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알루미늄 캔이 혹시 대세가 될 수도 있을까요. 더운 여름날 생수 한 모금 머금고 생각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