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사 경영진의 성과·보수체계 개선에 나선다.
기존 보상체계가 단기 성과주의를 부추겨 불완전판매나 과도한 영업 경쟁, 단기·고위험 자산운용 등 중장기으론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금융지주나 대기업 계열 보험사 CEO의 경우 요직이 아닌 '거쳐가는 자리'로 인식되다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과거 보험사들은 표준화 이전 실손의료보험이나 고금리 확정형보험 등의 판매 경쟁에 나섰다가 손실이 커지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최근엔 높은 환급률을 내세운 무해지·저해지보험, 거액의 보험금을 정액 지급하는 운전자보험 등을 무분별하게 팔다가 금융감독원의 경고장을 받았다.
12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보험연구원과 주요 보험사들,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보험사 단기 실적주의 개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가 열렸다.
이번 TF는 기본급보다 성과보수 비중을 더 높이고, 성과보수 지표도 중장기 기업가치와 연동하는 방향으로 보험사 경영진의 보상체계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성과와 무관한 기본급 비중이 높다 보니 중장기 성과를 내려는 움직임에 소극적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 임원 총보수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64.2%에 달해 미국의 16%, 영국의 47.6%와 비교해 훨씬 높았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은 성과보수를 장기간에 걸쳐 이연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최소 이연기간이 3년으로 짧다는 점도 문제다. 10년을 훌쩍 넘어가는 보험상품 운용기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호주 등에서는 경영진이 단기 실적에 매몰되지 않도록 성과·보수를 최대 7년 동안 이연 지급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TF에 속한 메리츠화재를 모범사례로 꼽는다. 메리츠화재는 2017년부터 임원의 성과보수 중 약 10~40%는 현금 지급하고, 나머지는 수년에 걸쳐 이연 지급하고 있다. 특히 CEO의 이연 기간은 9년으로 전체 금융회사 중 가장 길다.
임원 성과평가 방식이나 보수 체계를 상세하고 공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보험사는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임원의 보수 총액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산출 방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고객 만족도와 불건전 영업 적발 건수 등 보험 특성에 맞는 비재무적 지표를 최대한 활용하고, 활용방법과 기준, 평가결과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고 본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한 손보사가 초등학생을 상대로 수천만원의 구상금을 요구한 소송 사례도 단기 실적주의 탓이 크다"라며 "보험금을 적게 줄수록 능력있는 임원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사라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공시제도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법적으로 이 문제를 풀기 어렵다면 공시를 강화해 자율적으로 시장을 바꿔가겠다는 복안이다.
십수 년째 답보상태에 있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 17) 도입도 촉매제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그러면 막대한 자본확충이 필요해 CEO의 성과보수 역시 단기간에 처리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만큼 장기 성과와 연동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기 성과주의에 따른 폐해가 지속되면 보험사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떨어지고 보험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면서 "성과체계 개편이 제대로 자리 잡으면 많은 보험사 CEO가 금융지주나 은행처럼 장기 재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