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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보험사가 실손청구 전산화를 원하는 '진짜' 이유

  • 2021.11.23(화) 07:05

수년째 표류중, 23일 보험업법 개정안 법안소위 예정
보험사, 소비자 이익 내세우지만 손해율 관리 목적도

12년째 공회전 중인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법안이 올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이 23일 마지막 법안소위를 앞두고 있는 것인데요. 의료계가 개인 의료정보 유출 위험 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는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매년 실손보험 적자를 호소하는 보험사들이 청구 전산화를 찬성하고 있어서입니다. 법안이 실현돼 실손보험금 청구가 늘어나면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 비율)이 더 올라가고 적자가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한데 말이죠. 왜일까요? 업계의 속내를 들여다볼까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절실'

현재는 보험 가입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병원에서 여러 가지 증빙서류를 발급받아 팩스나 설계사, 휴대폰 모바일 앱 등을 통해 보험사에 보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아 소액의 진료비는 청구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죠.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지난 5월 금융소비자연맹 등 3개 시민단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7.2%가 최근 2년 이내 실손보험금을 청구를 포기했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들이 청구를 포기한 금액은 30만원 이하의 소액 청구 건이 95.2%를 차지했는데요. 청구를 포기한 이유는 진료금액이 적어서가 51.3%로 가장 많았고,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도 23.5%를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실손보험금 전산 청구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의 78.6%에 달했는데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이뤄지면 보험 가입자가 병원비를 계산하면서 실손보험금을 요청할 경우 병원이 관련 서류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전산망을 통해 보험사로 보냅니다. 지금처럼 번거로운 절차가 모두 사라지고 손쉽게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해 필요한 서류가 4~5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수억 장의 종이도 아낄 수 있게 됩니다.

의료계 입김에 수년째 표류중

하지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수년째 깜깜 무소식입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비효율적인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뒤 매년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데요. 21대 국회에서도 5개나 발의됐습니다.

입김이 센 의료계의 반대 때문인데 개인의 의료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고 작은 병원이나 의원은 시스템 구축이 부담된다는 이유죠. 보험금을 일일이 청구 해주는 게 병원 본연의 업무도 아니니까 일을 더 늘리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진단서에 기재된 비급여 부분이 의료 수가를 적용하는 심평원에 들어가면 결국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부담인 겁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은 의사들의 가장 큰 수익원이거든요. 연간 2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진단서 발급 수수료 수입도 아쉽고요.

보험사가 전산화를 원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보험사에게도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작년 기준 3900만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지만 보험사들에겐 골칫덩이 취급을 받습니다. 적자가 매년 심화되고 있거든요. 보험사들은 지난해에도 실손보험 부문에서 2조5000억원의 손실이 나 2016년부터 5년째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보험료를 올리고 있지만 지난해 합산비율이 123.7%를 기록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발생손해액과 실제사업비를 보험료 수익으로 나눈 합산비율은 100%가 넘으면 보험사가 손실을 보면서 팔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전산화가 이뤄지면 그동안 번거롭다는 이유로 안하던 실손보험금 청구로 낙전수입이 줄기 때문에 손해가 더 커질 수 있는데요. 이 금액이 수천억에 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보험업계는 청구 전산화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은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게 보험사들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명목입니다. 비싼 병원 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손쉽게 착착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보험사들은 편의서비스 제공으로 이미지 개선도 할 수 있습니다. 운용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보험사들로서는 보험 가입자가 보낸 서류를 심사하고 회사 전산에 입력한 후 보관해야 하는 것이 부담입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숨겨둔 더 중요한 이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직 암보험 등 건강보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분들은 주의깊게 들으셔야 하는데요. 보험 가입자들이 받은 실손보험금과 질병정보 기록은 보험사에 남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기록은 향후 보험에 새로 가입할 때 ICIS(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를 통해 전체 보험사가 공유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보험료가 할증되거나, 부담보 조건이 붙거나, 비싼 유병자보험으로 가입될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ICIS의 세계]①"내 보험가입이 거절 당했다"(10월13일)

예컨데, 단순히 허리가 아파서 통증의학과에서 권하는 주사를 맞고 실손보험금을 탔다고 칩시다. 이후에는 웬만한 척추질환에 대한 보험가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실손보험금을 내주는 대신 다른 건강보험 상품의 손해율 관리가 용이해지는 거죠.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보험사 이득은 또 있습니다. 지난 7월부터 달라진 4세대 실손보험의 특징은 잘 아시죠?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을 받은 내역이 없으면 보험료의 약 5%를 깎아주는데요. 청구 전산화로 쉽게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 보험료를 할인받을 가능성도 점점 낮아지겠죠.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지만 모든 것이 보험 가입자에게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보험사들이 전산화를 바라는 진짜 이유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다음달 9일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점을 고려하면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 법안소위인데요.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린 만큼 올해는 꼭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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