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하반기 공채에 돌입했다. 이들 은행들은 채용 빙하기임에도 불구하고 채용인력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작 신입행원 채용 비중은 줄이면서 청년 채용이라는 사회과제에는 등을 돌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8월 있었던 '2022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에서 내건 '같이 하는 금융권 취업! 함께 여는 청년의 내일!'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2000명 중 '신입자리' 절반도 안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농협 등 4개 은행이 올해 하반기 공개채용계획을 내놨다. 이들 은행의 채용 규모는 △KB국민은행 700명 △신한은행 700명 △농협은행 120명 등이다.
하나은행은 채용규모는 확정하지 않았으나 세 자릿수의 직원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10월 중 채용공고를 낼 예정이며 우리은행 역시 세 자릿수의 직원을 고용키로 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5대은행이 올해 채용에 나서는 인력 규모는 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과 2021년 5대 은행 하반기 공채 규모가 1000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폭 채용을 늘린 모습이다.
하지만 아쉬운 지점도 있다. 이번 채용중 절반 이상은 경력직, 퇴직자 재채용 등으로 이뤄질 예정이어서다.
구체적으로 KB국민은행의 신입행원 채용수는 절반보다 약간 많은 수준인 400명이다. 신한은행 역시 신입행원을 위해 준비된 자리는 400명 이하다.
농협은행은 이번에 채용하는 120명의 자리를 모두 신입행원에게 할당하지 않는다. 우리은행의 경우 100명 가량의 신입 행원을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은 '신입공채'를 내건 만큼 온전히 신입행원을 뽑는다는 계획이지만 그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올해 하반기 5대 은행의 채용규모 2000명중 사회 초년생에게 주어진 자리는 1000개가 안되는 셈이다. 그동안 '공채'라는 것이 신입행원들만을 채용해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공채'의 의미가 달라지는 모습이다.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반기 공채라고 하면 신입행원 위주로 채용을 진행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은행을 둘러싼 영업환경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다 보니 채용의 모습도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은행 왜 '경력직 우대' 됐나
은행이 채용을 함에 있어서 사실상 경력직을 우대하게 된 것은 은행의 디지털 화가 가장큰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이번 은행권이 채용하는 인력 중 60%이상은 IT/디지털 전문인력이다. 전문 금융지식을 쌓은 인재보다는 디지털 경쟁력을 이끌어갈 인재를 뽑는다는 의미다. 상경계열 취업준비생들의 꿈이나 다름없던 은행에서 더이상 그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은행의 많은 업무에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가 도입됐고 대 고객 업무에서도 인력이 투입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며 "반면 과거 전산실 수준에서 운용해오던 IT인력은 은행의 비대면화, 디지털화로 인해 그 수요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디지털 부문에서는 빠르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즉시전력감 인력이 필요한데 이는 은행권 뿐만 아니라 전 산업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단 경력직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들어 유독 늘어난 '퇴직자 재채용'
올해 은행 하반기 공채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문은 퇴직자 재채용이다. 정년, 희망퇴직으로 현장을 떠났던 행원들을 다시금 불러오겠다는 의미다.
이는 신입행원들의 채용을 줄이면서 점차 줄어가는 '금융전문가' 인력 공백을 메꾸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일을 더 하기 원하는 금융기관 퇴직자들은 여전히 많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금융지식을 활용하면 인건비를 절약함과 동시에 필요한 필수인력 공백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정년이 끝나고도 일을 원하는 은행 퇴직자들이 많고, 과거 희망퇴직으로 일찍 퇴직했던 은행원중 일부는 현장복귀를 바란다"라며 "퇴직자 재채용은 결론적으로 인건비를 절약하면서도 필수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 관계자는 "퇴직자 재채용은 임금피크제에 대한 판결 영향도 크다"라며 "임금피크제 위헌 판결 이후 소송을 줄이기 위해 이들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오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