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려왔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작년 3월 이후 '빅 스텝(0.5%포인트 인상)',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까지 동원하며 10회 연속으로 금리 인상을 결정했지만 11번째에서는 걸음을 멈췄다. 15개월 만에 첫 동결이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확연하게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금까지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일단은 지켜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은 연준이 올해 추가 인상 여지를 남겨둔 점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하반기 중 두 번 이상 기준금리를 기준금리 상단을 6.00%까지 끌어올릴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보고 있다.
15개월 만에 'STOP'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14일(현지시각)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정책금리를 현 수준인 5.00~.525%로 유지해 운용해 나간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부터 이어져 온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1년 3개월 만에 멈춘 것이다. ▷관련기사: 미국 '자이언트'에서 '빅'으로…금리인상 속도조절(2022년 12월15일)
이날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종료한 것은 그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의 가장 큰 근거였던 물가 상승세가 더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금껏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온 만큼, 그 영향을 잠시나마 지켜보며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2년여 중 가장 작은 증가폭이다.
연준 역시 성명을 통해 "목표 금리를 일정하게 유지해 추가 정보와 이 정보의 정책 함의에 대해 위원회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간의 기준금리 효과를 점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기준금리 인상 끝 아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번에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멈춘 것보다는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크게 열어뒀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는 했지만 태세는 '매파'적이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연준은 "물가 상승률을 2%로 되돌리기 위해 강하게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 물가 추이가 연준이 원하는 수준까지 가기에는 여정이 멀다는 점을 드러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 역시 FOMC 이후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 높은 상태여서 거의 모든 FOMC 참석자가 현재의 통화정책 지속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며 "이번 동결 결정은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지 인상 사이클 중단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날 함께 공개된 점도표(FOMC 위원들이 예상하는 금리)를 살펴보면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은 5.6%로 제시됐다. 지난 5월 제시됐던 점도표의 중간값 5.1%보다 0.5%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점, 점도표 중간값이 0.5%포인트 인상됐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올해 1~2회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역시 미국의 추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경계했다.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번 FOMC의 결정은 정부와 시장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라면서도 "미국 등 주요국의 향후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 추가 여력 확보
미 연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덕에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데 다소 여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1월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한 이후 계속해서 동결해 나가고 있다.
다만 통화당국 역시 추가 인상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확실하게 물가 상승세를 잡고 가야 한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내비쳐 왔다. ▷관련기사: 기준금리 3연속 동결…'닫히지 않은' 인상 가능성(5월25일)
그러나 금리 인상을 밀어부치기에는 최근 국내 금융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올해 들어 금융권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가팔라지는 것이 대표적인 징후다. 경제주체들이 빚 상환 비용을 감내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이자 부담을 가중하는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가 만만찮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연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면 한은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미 간 금리차(현재 1.75%포인트) 확대로 발생할 수 있는 달러/원 환율의 상승,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등의 부담도 있었다.
이에 시장에서는 오는 7월13일로 예정된 통화정책방향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는 모습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여의찮은 상황에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커질 수 있었지만 미국의 동결 결정으로 한은도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