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보험산업의 위상은 세계 7위로 굉장히 높은데 글로벌 보험그룹에 선정된 회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국내에 치중하다 보니 역동성이 결여되고 경쟁만 치열한 상황입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보험사의 총자산, 수입보험료 등 시장 규모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외국 시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국가, 지역별로 다른 규제와 공고한 기존 시장을 원인으로 꼽는다.
시장 점유율 높아도 국제성은 '뚝'
스위스 기반의 세계적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작년 기준 한국의 세계 보험시장 점유율은 2.6%로 세계 7위다. 전년보다 수입보험료가 3.2% 감소하긴 했지만 순위는 유지했다. 점유율 1~6위는 미국, 중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순이다.
다만 세계적인 보험사로 인정하는 척도인 국제보험그룹(IAIG)에는 한 곳도 들지 못했다. 국제보험그룹은 보험 감독 당국이 모인 국제보험감독자회의(IAIS)가 선정, 규모와 국제성을 평가해 매년 명단을 발표한다. IAIS에는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원도 가입했다.
올해 7월 기준 국제보험그룹은 총 58곳이다. 중국(홍콩)은 프루덴셜, AIA, FWD 등 3곳이 이름을 올렸고, 일본에선 5개사가 명단에 포함됐다. 한국보다 시장 점유율이 낮은 스위스 5곳, 캐나다 4곳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도 한 곳씩 국제보험그룹을 배출했다.
국제보험그룹을 선정하는 기준은 규모와 국제성으로 나뉜다. 규모 측면에서 최근 3년 평균 △총자산 500억 달러(한화 약 66조) 이상 혹은 △총 수입보험료 100억 달러(한화 약 13조)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삼성화재 등 4개 사가 기준을 넘어섰다.
문제는 국제성 조건이다. 3개 이상 국가에서 영업하고, 국외 수입보험료가 전체 수입보험료의 1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한화생명과 삼성화재가 각각 해외점포를 3곳 이상 운영하고 있지만, 전체 수입보험료 중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수준으로 미미하다.
규제에 치이고 한국 기업에 의존
세계 시장의 대표적 진입장벽은 '규제'다. 어디서나 규제 당국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는 만큼 규제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다. 특히 세계 보험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나라뿐 아니라 주·시정부마다 조금씩 다른 규제가 적용된다.
결국 현지 사정에 능통한 현지 기업이나 인력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들과의 융합이 또다른 과제다. 나라마다 영업이나 내부 업무수행 방식이 달라서다. 본국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해외 법인을 가진 한 보험사 관계자는 "한국만 해도 규제가 끊임없이 바뀌는데 외국기업으로서 이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대관을 위해 현지 보험업계에서 유명한 분을 모셨는데 정작 회사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서 계약을 종료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공고한 강자들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어렵다. 업계는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더라도 해당 지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보험을 도맡는 게 주 영업 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우스갯소리로 삼성, LG가 없었으면 한국계 금융사는 다 망했을 거라고 한다"며 "일단 한국 기업 위주로 영업하고 점차 영업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사실상 정체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