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네이버는 현재 시가총액 70조원의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옛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은 생활 밀착형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모바일 강자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역사'이자 양대산맥 네이버·카카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동반 성장한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그야말로 자존심 대결이다. 인터넷 최대 맞수 네이버와 카카오가 쇼핑, 즉 '커머스' 사업을 놓고 벌이는 경쟁 말이다.
두 회사가 커머스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벌이는 물밑 작업 등을 보고 있으면 '과연 오랫동안 티격태격해온 라이벌 관계가 맞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검색을 기반으로 상품정보와 간편결제, 배송 등을 붙이며 거래액 기준 압도적 1위 자리에 올라선 네이버. '생활 밀착형 메신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간단한 커피 쿠폰에서 샤넬·디올 등 웬만한 명품 패션 잡화까지 취급하며 치고 올라오는 카카오.
두 회사는 그동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커머스 사업을 키워오며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었으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커머스 시장이 코로나19로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데다 업계가 지각변동하면서 두 회사의 관심 영역이 점차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평정한 네이버쇼핑, 최저가 정보부터 결제·배송까지
네이버는 커머스 사업으로 얼마나 벌까. 올 1분기 네이버의 연결 매출 1조6635억원 가운데 커머스 매출은 3653억원, 비중으로 21%에 달한다. 검색 기반 광고(서치플랫폼) 매출 8260억원 다음으로 많다. 지난해 네이버 플랫폼 내에서 쇼핑 거래액은 무려 29조원, 국내 업계 1위다.
인터넷 세계의 관문 '포털'로 출발한 네이버가 쿠팡이나 G마켓, 11번가와 같은 쟁쟁한 전자상거래 사업자들을 발 아래 둘 정도로 성장한 것은 한두해 걸쳐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1999년 회사 설립 초기부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업력이 20여년에 달할 정도로 길다.
설립 초기 외부 쇼핑몰을 포털 사이트에 입점시켜 사업을 하던 네이버는 2001년 '네이버쇼핑'을 론칭하고 본격적으로 커머스 사업에 발을 들인다. 검색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이용자 방문이 늘어나자 사업 영역을 쇼핑 분야로 확대한 것이다.
간단한 상품 정보 제공 수준에 그쳤던 커머스 사업은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추가하면서 완성된 형태로 진화했다. 2012년에는 모바일에 최적화한 쇼핑 서비스를 내놨으며 2014년에는 중소상공인들이 입점해 상품을 팔 수 있는 '스토어팜'(현 스마트스토어)을 비롯한 관련 서비스를 줄줄이 선보였다.
한때 네이버는 '검색을 앞세워 유통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자 2014년 오픈마켓 서비스를 접고 잠시 힘을 빼기도 했다. 그러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커머스'에 집중키로 하고 재차 서비스를 강화했다.
단순 정보보다 상품에 대한 검색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구글과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 등 다른 주요 인터넷 기업들이 글로벌 커머스 시장 패권을 가져가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커머스 전략은 상품 검색부터 결제와 배송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상품 최저가 정보를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는 쇼핑 검색으로 편의성을 높이면서 간편결제 '네이버페이'를 붙여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물류 강자인 CJ대한통운에 대한 지분 투자로 배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으며 판매자들의 입점 공간인 '스마트스토어'의 편의성 강화 및 중소사업자를 위한 신용대출로 사업 확장의 마중물을 대주기도 했다.
커머스는 네이버의 수많은 서비스 가운데 메인이자 역점 분야답게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온라인 쇼핑으로 사람들이 몰린 것도 기폭제가 됐다.
네이버는 커머스 매출 수치를 지난해 3분기부터 별도로 빼내어 공개하고 있다. 그만큼 주력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네이버의 지난해 연간 커머스 매출은 1조896억원이다. 전년에 비해 38% 증가한 수치로 가장 도드라지게 성장했다.
카카오, '선물하기' 위력에 커머스 떼었다 붙였다
네이버가 검색이란 주춧돌 위에 커머스 사업을 키웠다면 카카오는 간판 플랫폼 '카카오톡'에 기반한 사업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톡의 지인에게 커피나 빵 등의 교환 상품권으로 시작한 '선물하기'가 카카오 커머스의 메인이다.
이 역시 꽤 오래된 서비스다. 카카오톡 앱이 2010년 출시한 그해 말에 선물하기가 곧바로 서비스되었으니 올해로 12년차다. 현재는 카카오 커머스 매출의 대부분인 80%가량을 선물하기가 채우고 있다.
카카오의 커머스는 독특하게도 카톡을 기반으로 한 '관계형 비즈니스'다. 본인의 직접 사용하려고 구매하기보다 지인에게 선물을 해주려는 용도의 서비스로 출발했다.
네이버의 커머스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물론 최근 카카오의 선물하기도 자기가 구매해 남이 아닌 본인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지만 말이다.
선물하기는 서비스 초기 커피나 도넛 같은 먹거리 쿠폰이나 공연티켓 등을 주로 다뤘으나 갈수록 다루는 품목이 확대됐다. 도서나 의류에서부터 식품, 액세서리, 주방용품, 심지어 스마트폰과 블랙박스 등 웬만한 물건들을 다 팔고 있다. 최근에는 명품 패션 브랜드가 속속 입점하면서 고가의 상품도 취급하고 있다.
카카오 사업 초기 커머스는 유일한 수익 모델이기도 했다. 카카오톡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했지만, 2011년까지 카카오는 130억원 상당의 영업손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선물하기 서비스가 일간 1만건의 판매 기록을 세운 덕분에 이듬해인 2012년 흑자전환(영업이익 70억원)에 성공한다.
카카오는 2014년 옛 다음과의 합병으로 다음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한 '쇼핑하우'를 품게 된다. 하지만 선물하기를 뛰어넘을 정도의 파급력은 없었다. 카카오는 2017년 장보기, 쇼핑하기 등을 카카오톡에 차례로 추가하다 급기야 커머스 사업을 떼내기로 했다.
당시는 카카오가 모빌리티와 핀테크 등의 사업을 분사하거나 신규 법인으로 세워 여러 계열사 각각의 전문성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지금의 커머스 계열사인 카카오커머스 역시 '해외 직구 사업을 통해 글로벌 커머스로 키우겠다'는 목적으로 2018년 12월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킨 회사다.
카카오커머스의 성장세가 거세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94%, 111% 성장했다. 거의 두배씩 늘었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매출의 대부분인 80% 수준이다보니 마케팅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수익성이 높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7.8%에 달한다.
카카오커머스의 기대 이상의 성장세에 고무된 카카오는 떼어냈던 회사를 다시 합치기로 한다. 다른 계열사에 비해 '알짜'라는 것을 확신해서다. 카카오커머스는 오는 9월 1일자로 카카오에 흡수합병될 예정이다.
ICT 투톱,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서 마주치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키워온 커머스 사업이 올 들어 종종 겹치는 모양새다. 쿠팡의 뉴욕시장 상장 영향으로 국내 커머스 업계에 지각변동이 이어지면서 네이버, 카카오의 사업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회사가 매물로 나온 오픈마켓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G9) 인수를 나란히 검토했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글로벌 전자상거래기업 이베이가 한국 사업체를 매각하겠다고 공지한 이후로 M&A 시장은 잠재 매수자를 예상하는 추측이 무성했다. 초기 롯데와 신세계, 홈플러스(MBK파트너스) 등 전통 유통업체의 경쟁으로 귀결되던 분위기는 카카오와 네이버가 포함되면서 한층 달아올랐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의향서(IM)를 수령하며 인수전 참여 검토를 시작했다. 특히 카카오의 경우 이사회 구성원 전원이 적극 찬성할 정도로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예비입찰 마감일인 3월16일 오후, 김범수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카카오커머스 대표의 반대로 극적인 '불참' 소식이 전해진다.
김범수 의장이 불허한 이유는 '카카오식 커머스'를 해야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이는 카카오톡 플랫폼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독창적인 '관계형 커머스'로 시장을 공략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 카카오는 MZ세대 이용자를 대상으로 모바일 앱 서비스만 제공하는 '지그재그'와의 계약을 앞두고 있는 등 '믿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네이버는 카카오와 달리 IM을 열람했다는 사실조차 쉬쉬했다. 이베이코리아 본입찰 기간이 다가오도록 인수 의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접근이었다. 뒤늦게 신세계가 만든 컨소시엄의 2대 주주로 인수전에 간접 참여한다는 사실을 공시하면서 그간 내밀하게 주판알을 튕겨왔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그러나 6월 본입찰에 참여한 네이버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날로부터 정확히 6월 뒤 인수 의사를 철회한다. 네이버의 이런 행보를 두고 세 가지 해석이 나온다.
먼저 이마트가 네이버쇼핑 장보기 사업자로 입점하는 등 신세계-네이버 동맹이 굳건한 이상, 굳이 이베이코리아 지분을 취득하지 않더라도 중개수수료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 네이버에게 G마켓과 옥션은 짭짤한 중개수수료를 지불하는 우수고객이므로 관계가 먼 사업자가 대주주가 되는 것은 네이버에게 불리한 일이었다.
커머스 시장의 경쟁구도 문제도 있다. 네이버가 이베이코리아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거래액 기준 국내 1위(29조원) 사업자라는 지위를 쿠팡(24조원)이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세계가 3위 사업자가 되면서 커머스 시장의 파이는 3사가 골고루 나눠먹는 구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이베이코리아 지분 인수 요건에 '네이버 자사주 활용 불가'란 제한이 걸려있는 등 실질적인 문제도 있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동일한 커머스 매물을 놓고 경쟁 구도에 서는 일은 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커머스 사업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년이 채 안 됐다. 네이버는 최근 2분기 실적 컨콜에서 영업이익률이 정체되더라도 커머스 등 신사업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카카오커머스를 흡수한 카카오도 '시너지 극대화 및 시장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