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네이버는 현재 시가총액 70조원의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옛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은 생활 밀착형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모바일 강자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역사'이자 양대산맥 네이버·카카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동반 성장한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웹툰 및 웹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재탄생해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자주 나오고 있다. 검증된 원작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로의 변형판이 잇달아 히트를 치면서 지적재산권(IP) 확장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곳이 웹툰·웹소설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일찌감치 잘 만든 원작을 가지고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확대 생산해 내면서 관련 사업을 키워오고 있다.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흥행을 계기로 또 다른 원작의 영화화를 꾸준히 하면서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마블처럼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네이버와 카카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네이버는 해외 유망 웹소설 플랫폼 회사를 조 단위의 투자를 통해 품는가 하면 카카오는 웹툰을 비롯한 주요 콘텐츠 사업을 하나로 집적해 매머드급 콘텐츠 계열사를 출범시키며 사업의 고삐를 바짝 쥐고 있다.
2 라운드는 웹소설…왓패드·래디쉬 'M&A 맞불'
해외 웹툰·웹소설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가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경쟁적인 웹소설 플랫폼 인수전을 펼쳤다. 이들이 웹소설 플랫폼 인수에 지불한 가격을 합산하면 무려 1조원이 훌쩍 넘는다. IP 비즈니스 경쟁이 웹툰에서 웹소설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네이버는 올 1월 북미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지분 100%를 6억달러(약 67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왓패드는 월 이용자수(MAU) 9400만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웹툰 플랫폼이다. 네이버는 이번 인수로 글로벌 최대 웹툰·웹소설 사업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카카오도 지난 6월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지분을 차례로 인수했다. 래디쉬의 경우 한국인 창업주가 세운 유망 스타트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작품 수만 놓고 보면 왓패드에 턱없이 부족한 1만편 수준이나, 왓패드 절반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웹툰 사업을 장기간 해온 이들이 볼 때 왓패드와 래디쉬는 입맛에 딱 맞는 매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콘텐츠로 당장의 수익성을 내는 것보다는 상당수의 '인디' 작품을 축적해 트래픽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커뮤니티형 플랫폼으로 출발한 왓패드는 아마추어 작가의 무료 콘텐츠가 많은 플랫폼이다. 유료 콘텐츠 도입은 2년이 채 안 됐다.
반면 카카오는 '기다리면 무료'와 같은 유료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켜 빠르게 재무성과를 내는 길을 선호한다. 래디쉬는 프로 전문가 집단이 공장형 콘텐츠를 양산하는 플랫폼으로 대부분 콘텐츠를 유료 결제해 구독해야만 한다. 즉 네이버는 유튜브, 카카오는 넷플릭스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지불한 인수가를 두고 고밸류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래디쉬의 기업가치 5000억원은 지난해 기록한 연간 매출(218억원)에 주가매출비율(PSR)을 무려 22배나 적용한 값이다. 왓패드(작년 매출은 445억원)도 그에 못지 않은 PSR 15배의 기업가치를 매겨 품었다.
이들이 비싼 값을 주고 웹소설 플랫폼을 품은 배경엔 IP 비즈니스가 있다. 인기 웹소설은 웹툰화, 드라마화, 영화화되며 IP의 값어치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가치사슬을 이룬다. 웹소설은 웹툰 대비 발굴할 아마추어 군단이 많고 상대적으로 편수도 많아 수익성 전망이 밝다. 해외 구독자를 움직일 원천 IP를 개발할 수록 네이버와 카카오의 글로벌 위상은 점프할 가능성이 높다.
웹툰과 웹소설 간 플랫폼 통합 작업을 통한 비용 효율화도 가능하다. 최근 네이버는 웹툰 스튜디오와 왓패드 웹소설 스튜디오를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웹툰 사업 총괄 법인을 미국 법인으로 옮긴 후 영상 제작 비즈니스도 북미를 중심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네이버는 이를 위해 조성한 1000억원의 기금을 사용키로 했다.
웹툰 '금의환향'…7년 방치한 다음웹툰 손댄 카카오
올 들어 카카오는 웹툰·웹소설을 비롯한 콘텐츠 사업에 적극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옛 다음 시절부터 서비스해왔던 웹툰 플랫폼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카카오의 정체성을 확실히 부여하는가 하면 웹툰을 비롯한 콘텐츠 계열사들을 하나로 뭉쳐 전문 콘텐츠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카카오는 이달 1일 기존 웹툰 플랫폼인 '다음웹툰'을 '카카오웹툰'으로 대대적으로 손을 댔다. 서비스명만 바꾼 것이 아니다. 기존 PC 버전인 다음웹툰을 모바일 화면 형식으로 꾸몄고, 카카오페이지처럼 별도 카카오웹툰 어플리케이션도 출시했다. 카카오의 장점인 '모바일 중심'을 다음웹툰에 적용한 셈이다.
카카오가 다음 웹툰을 전면 개편한 것은 약 7년 만이다. 옛 다음의 '만화속세상'이 오픈한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카카오와 다음이 합병해 통합법인으로 출범(2014년)하면서 카카오가 다음웹툰을 선보인 것은 그해 10월부터다. 통합법인 출범 이후 여러 번의 업데이트가 있었으나 이번 처럼 획기적인 사이트 '대공사'를 거친 건 처음이다.
관련 업계에선 카카오가 종합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를 출범시킨 후 묵은 숙제를 해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카카오는 올해 웹툰·웹소설 사업을 하는 계열사 카카오페이지와 음원·음반 유통, 영상·공연 제작을 맡고 있는 또 다른 계열사 카카오M을 합병했다. 이렇게 출범한 것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카카오에서 분사한 '국내 1위 뮤직 플랫폼' 멜론컴퍼니도 내달 카카오엔터에 합류한다. 이로써 연간 매출 2조원 규모의 '공룡'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추정하는 카카오엔터의 기업가치는 무려 10조원 이상이다.
카카오엔터가 출범 이후 첫 결과물로 '카카오웹툰'을 선보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IP 사업을 무한 확장한다는 복안이다. 이번 개편을 통해 카카오엔터는 '웹툰 원작', '소설 원작'이라는 탭을 최상단에 배치했다. 또한 태국과 대만 등 해외 시장에 카카오웹툰을 선론칭하기도 했다.
론칭 이틀간 카카오웹툰이 벌어들인 거래액은 무려 10억원. 회사 측은 다음웹툰 대비 인당 구매전환율이 2.5배 증가했다고 집계했다. PC 버전으로도 충분히 감상이 가능하나, 카카오웹툰 앱 다운로드 수도 구글과 애플 양대 앱 마켓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거래액 기록은 카카오가 유료 결제 기능을 강화한 덕분이다. 그간 다음웹툰은 작품을 결제한 이후 영구소장이 불가능했다. 편당 200원을 주고 대여한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열람이 불가능했던 것. 카카오웹툰은 편당 500원에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애정하는 작품을 두고두고 보길 원했던 독자들의 유료 결제가 줄을 잇는 이유다.
크게 달라진 UI 탓인지 카카오웹툰 사용이 불편하다는 불만도 많다. PC 서비스인 다음웹툰에 각종 화려한 기능이 추가되고 모바일에 맞는 화면으로 개편되면서 트래픽이 과대 발생, 작동 오류가 잦은 탓이다. 카카오웹툰은 론칭 닷새 차를 맞은 지난 5일 일시 장애에 관한 사과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