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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vs카카오]⑤게임 떼내고 아고라 감추고

  • 2021.08.06(금) 10:54

네이버, 사행성 이슈 '한게임' 13년만에 분사
옛다음, 정치권 집중포화에 미디어 성격 축소

22년전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네이버는 현재 시가총액 70조원의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옛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은 생활 밀착형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모바일 강자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역사'이자 양대산맥 네이버·카카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동반 성장한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네이버와 카카오(옛 다음)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둘 다 인터넷 산업의 메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적지 않은 곡절을 겪었다. 

네이버는 설립 초기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게임 서비스가 사행성 이슈에 휘말리자 결국 2013년 관련 사업을 떼어냈다.

옛 다음은 한때 온라인 여론광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아고라'가 촛불집회 등을 이끌어 내면서 정치권에 미운털이 박히자 해당 서비스를 전면에서 내리기도 했다.

지금이야 두 회사가 검색과 쇼핑, 핀테크, 모빌리티, 콘텐츠 등으로 무한확장하며 거칠 것이 없어 보이나 말 많고 탈도 많은 서비스 탓에 무수한 외풍에서 자유로웠던 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네이버 초기 주력 '웹보드 게임' 성장사

인터넷 업계에선 '고스톱·포커류'의 줄임말인 '고포류'란 용어를 썩 달가워 하지 않는다. 어감상 부정적인 느낌이 들거니와 사행성 논란을 일으키는 도박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웹보드'란 말을 선호한다.

웹보드는 한때 네이버의 주력이었다. 네이버가 2000년에 흡수합병한 게임포털 '한게임'은 웹보드를 메인으로 했다. 전통적 인기 장르인데다 이만큼 30~50대 중장년층이 쉽게 즐길만한 게임이 없어서다. 당시 엠게임이나 넷마블·피망 등 다른 게임포털도 마찬가지였다. 

웹보드는 리니지류의 역할수행게임(MMORPG) 등 다른 장르와 달리 개발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마진이 높다. 기획에서 생산까지 걸리는 기간이 다른 게임 장르에 비해 짧지만 수익성이 꽤 높았다.

당시 네이버는 웹보드의 영업이익률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으나 증권가에선 무려 80%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다른 장르에 비해 이용자 층의 연령대가 높았다. 서비스 초기 한게임의 주 고객층은 10대가 아닌 실구매력이 뒷받침되는 20~30대 남성층이 대부분이었다. 네이버는 이들을 다른 사이트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유료 회원으로 잡아 놓으면서 사업을 키웠다. 

게임은 네이버의 안정적인 매출원으로 금새 자리를 잡으면서 재무 성적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다. 설립 초기인 2001년만 해도 네이버 전체 매출(243억원)의 절반 이상인 153억원이 게임을 통해 나왔다. 게임 매출은 2006년 1000억원을 돌파(1288억원)했다. 이후 매년 1000억원씩 늘어나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사행성 논란에 결국 게임 사업분할

웹보드로 개선되는 실적 만큼이나 비례해 사행성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쌓여갔다. 한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8년에는 한 지상파 TV 시사프로그램에서 고포류에 빠져 경제적 손실은 물론 가정이 파탄나는 사례를 고발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네이버는 편향된 뉴스 편집 논란으로 정부와 정치권에 밉보이던 시기였다. 네이버가 국내 검색 시장을 평정하면서 첫화면 뉴스 서비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거셌다. 

결국 네이버는 2013년에 말 많은 게임 사업(현 NHN)을 인적분할 방식으로 떼어냈다. 이로써 검색과 함께 핵심축을 담당했던 게임을 13년만에 접은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와 지금의 NHN을 같은 계열 관계로 아는데 아니다. 기업 분할 이후 두 회사의 '오너' 간 지분 정리로 완전히 갈라져 다른 회사다. 

현재 네이버는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CIO)가, NHN은 이준호 이사회 의장이 각각 오너다. 두 오너는 2001년 당시 이해진 의장이 이끄는 네이버컴이 이준호 의장의 서치솔루션이란 검색업체와 합병하면서 동반자 관계를 맺은 바 있다. 그러다 NHN이 분할로 네이버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독자 행보를 걷게 된 것이다. 

옛 다음, 토론 게시판 아고라 유명세 

네이버가 한게임 사행성 논란으로 곤혹을 치뤘던 2008년은 옛 다음도 토론 게시판 아고라의 유명세에 적잖이 시달렸던 시기다.

아고라는 다음이 2006년에 처음 선보인 서비스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자유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장소 이름을 따와 만들었다. 

다음은 당시 네이버나 야후코리아 등 다른 인터넷 검색포털에 비해 유독 미디어 속성이 강했다. 초기엔 '미디어 다음'을 통해 포털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블로그 기자단을 직접 운영할 정도였다.

이들의 콘텐츠를 뉴스면에 전면 배치해 여론 확산에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끼쳤다. 외부 언론사로부터 공급받은 기사 뿐만 아니라 자체 생산한 미디어 콘텐츠까지 같은 비중으로 노출시켰다. 

여기에 아고라는 정치, 경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네티즌의 소통과 참여를 이끌어내고 증폭시켜 여론 형성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에 아고라는 여론을 주도한 진원지로 주목받기도 했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경제 논객이 정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공간도 아고라였다.   

아고라 대신 돈 되는 쇼핑·게임 전면에 

검색포털은 뉴스 콘텐츠 유통을 통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각별한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포털 길들이기'나 '표적성 세무조사' 등의 말들이 많이 회자된 것도 이러한 관심이 지나치게 작용해서다. 실제로 당시 정부와 정치권에선 포털의 뉴스 편집권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규제 법안 등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러자 다음은 2009년에 첫화면에서 아고라 대신 쇼핑이나 게임 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정치색 빼기에 주력했다. 다음은 뉴스면에서 아고라를 분리해 로그인창 아래에 위치한 추천 서비스 박스로 옮기고 대신 뉴스면에 경제 탭을 신설했다. 경영에 부담을 주는 아고라보다 돈이 될만한 서비스들에 역량을 모은 것이다.

마침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불황으로 주력인 인터넷 광고 시장이 위축되는데다 포털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자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은 아고라를 포함해 미디어 서비스를 육성시켰던 석종훈 대표 후임으로 2009년 '재무통' 출신의 전문경영인 최세훈 대표를 선임, 조직개편 등 체질개선에도 나섰다.

이후 유명무실해진 아고라 서비스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다 2019년에 조용히 종료됐다. 한때 국내 최대 온라인 여론 광장이었던 아고라가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네이버와 다음은 '웹 생태계의 초토화 주범' 등으로 몰리면서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동네북'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로 인해 외국계 업체들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국내 인터넷 산업이 제조업 등 다른 분야에 비해 홀대를 받아온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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