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계에 부는 인공지능(AI) 바람이 매섭습니다. 국내외 테크 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상용화 소식이 잇따르면서 이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알아서 매끄러운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나 건조기에서 따뜻한 빨래를 꺼내와 거실에서 옷을 개어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매끄러운 아스팔트 도로와 안락한 거실에 머무는 사이 흙먼지 날리는 건설 현장에서는 이미 AI 기술이 조용히 실전을 치르고 있는데요. 최근 HD현대가 실제 공사 현장에 구현해 낸 무인화 이야기입니다. 가장 먼저 척박한 산업 전선에 안착한 차세대 AI 기술을 살펴봤습니다.
지도 없는 건설현장, 스스로 길 찾는 AI 굴착기
일반적인 자율주행 기술은 잘 정비된 도로와 고정된 내비게이션 지도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매일 흙을 파내고 옮겨 지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건설 현장에는 도로도, 고정된 지도 데이터도 없습니다. 공사장에서 바위와 진흙탕을 피해 가며 정밀하게 땅을 다지는 작업을 그동안 베테랑 조종사의 숙련된 감각과 눈썰미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HD현대의 건설기계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드론과 AI 센서를 결합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늘에 뜬 드론이 현장을 촬영해 기본 지형도를 만들면 굴착기에 장착된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센서가 실제 지면을 실시간으로 읽어 들이며 정밀하게 오차를 보정합니다. 이 데이터는 곧바로 AI의 설계도가 됩니다. AI는 이를 바탕으로 흙을 어디서 파내고 어디로 옮길지 최적의 작업 경로를 스스로 계산해 장비를 움직입니다.
실제로 지난 4월 스위스 투겐 지역의 토목공사 현장에 처음으로 투입된 22톤급 무인 자율 굴착기는 이 방식으로 1km 구간의 토공 작업을 사람 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작업자의 피로도나 숙련도 편차가 없다 보니 사람이 직접 운전할 때보다 평균 생산성은 120%까지 뛰었습니다.
사람만 골라 세운다…유럽이 반한 K기술
중장비 무인화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은 무엇보다 안전입니다. 거대한 중장비가 스스로 움직이는 만큼 사소한 오작동이나 인식 오류도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HD건설기계가 개발한 긴급 자동 제동 기술 E-STOP은 고도의 AI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장비에 달린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가 작업 반경 내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는데, 단순한 장애물과 현장 작업자를 정확하게 구분해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보행자가 위험 거리에 들어오면 감속과 정지 단계를 자동으로 조절해 장비를 완전히 멈춰 세웁니다. 안전 규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에서 '사모테르 기술혁신상'을 거머쥐며 경쟁력을 인정받은 비결입니다.
이 기술은 조만간 국내 현장에도 본격 도입됩니다. HD건설기계는 현대건설과 손잡고 올 하반기부터 E-STOP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굴착기를 실제 건설 현장에 공급할 예정입니다. 장비를 잘못 조작하더라도 설정해 둔 가상의 벽을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버추얼 월(Virtual Wall)' 기술 등도 함께 적용해 작업장 내 충돌이나 전복 사고를 원천 차단한다는 계획입니다.
HD현대가 AI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산업 현장의 뿌리를 흔드는 구조적 위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일터를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전 세계 건설 현장은 이미 구인난이라는 공통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무인화 기술은 현장의 위험성을 낮추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광산이나 붕괴 위험이 도사리는 험지에 무인 장비를 먼저 투입하면 작업자를 위험 환경으로부터 원천 분리할 수 있죠. 생산성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셈입니다.
그룹 차원에서는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대표이사 직속으로 AIX추진실을 신설하고 건설기계와 조선, 로봇 등 전 사업 분야에 초격차 AI 기술을 이식하는 컨트롤타워를 가동 중입니다.
미래 건설기계 시장의 주도권은 더 힘 좋고 튼튼한 기계를 만드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사람 대신 두뇌 역할을 할 AI 기술력이 핵심 승부처가 된 모습인데요. 모두가 도로 위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가 바꿀 새로운 시대에 주목하는 사이 건설 현장에서는 이미 AI 기술이 실전을 치르며 가장 먼저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