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제미니 협력' 등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을 앞두고 부산항의 위상 격하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비즈워치가 주요 선사들의 항적 항로 전략과 국내외 해운·항만업계 전문가 의견을 확인한 결과 '기우'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화주들 입장에서는 해운동맹 재편 이후에도 부산항의 역할이 지속되고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제미니 협력 이후에도 운송 기간 등에서 부산항이 중국의 주요 항만들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일각의 우려처럼 쉽게 '패싱'되기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선박이 기항지를 모두 돈 후 최종 목적지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기항하는 항구인 'Last Port'로서의 위상도 여전히 굳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항, 운송기간 단축 등 또 다른 선택지로 각광 가능
최근 업계 분석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계적 선사 머스크(선복량 2위)와 하팍로이드(선복량 5위)가 내년 2월부터 새로운 동맹인 제미니 협력을 맺으며 유럽~아시아 항로에서 한국 부산항과 일본, 베트남, 그리고 대만 등을 기항지에서 제외하는 계획을 밝혔다. 이로 인해 부산항은 허브항에서 피더항으로 격하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증폭됐다. ▷관련기사: 머스크 등 세계적 선사들, 부산 '패싱'…부산항만공사 '고심'(2024년 3월 15일)
*피더항(Feeder Port): 큰 컨테이너 선이 직접 기항하지 않고 소규모 컨테이너 선이 기항하는 항구. 허브항(Hub Port: 중추항)과 반대 개념으로 쓰인다.
이에 대해 비즈워치가 선사들의 항적 항로 전략을 입수해 취합한 결과, 제미니 협력에 대한 우려가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간과했다는 분석이다.
제미니가 발표한 '부산→탄중펠레파스→싱가포르→샤먼→광양-→부산' 전용 셔틀노선에는 6000~9000TEU급 선박이 정기 운항할 예정이다. 해당 선박은 부산에서 중국 항만을 거치지 않고 말레이시아 탄중펠레파스까지 바로 운송(6~7일) 된 후, 탄중펠레파스에서 환적돼 최종 목적지인 유럽으로 운송된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부산→로테르담 노선의 경우 45~50일(홍해 사태 전 기준)에서 30일로 운송 기간이 대폭 감소한다.
또 제미니 협력이 시작되면 중국 주요 항만의 유럽향 화물 운송일보다 부산항이 더 적게 걸린다. 제미니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닝보, 상하이, 칭다오 항은 유럽까지 각각 35일, 32일, 33일이 소요되는 반면 부산항은 30일이 소요된다. 선박의 경우는 90%, 화물은 95%의 확률로 운송시간 준수를 명시하고 있다.
즉, 화주는 제미니 협력을 통해 해외 항만에서 환적을 1회 하기는 하지만 운송시간이 더 짧은 선사를 선택하거나, 기존처럼 운송시간은 더 걸리지만 부산항에 직기항하는 대형 모선을 통해 화물을 날라도 된다. 화주들에게 전에 없던 여러 개의 선택지가 생기는 셈이다.
앞서 하벤 얀센 하팍로이드 대표이사는 2024 TPM 컨퍼런스(컨테이너 해운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컨퍼런스)'에서 "제미니 협력이 투입하는 '전용 셔틀 선박'은 수백 박스를 운송하는 통상적인 피더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한 번에 4000~5000TEU를 운송하고, 특정 터미널 양하와 적하를 동시에 할 수 있어 터미널 입장에서는 물량 측면에서 제일 효율적인 선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셔틀의 전항지와 차항지가 1~2개 정도에 불과해 터미널에서 물량을 다루기(handling)도 아주 쉽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초대형선(2만 TEU급)은 터미널 생산성도 높게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투입하는 셔틀은 6000~9000TEU 짜리로 대부분의 터미널에서 생산성이 가장 잘 나오는 선박 사이즈"라고 덧붙였다.
해운 전문가도 "초대형선은 낮은 생산성 때문에 정시성이 많이 훼손돼 항구를 스킵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스킵이 발생하지 않는 셔틀이 오히려 터미널 운영사 수입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항 배제, 현실적으로 힘들어…日은 대안 못돼
또 다른 해운 전문가는 2023년 기준 아시아-유럽 간 수출입 컨테이너 교역량에서 중국이 전체의 약 70%인 1570만TEU를 처리하고, 바로 두 번째가 한국(약 150만TEU, 비중 6.5%)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의 유럽향발 수출입 물량의 약 90%를 차지하는 부산항(약 140만TEU)을 배제한다고 가정할 경우 동북아에서는 일본이 대안일 수 있는데 일본은 항구가 각 시도별로 분산돼 있어 물류 집중을 이루기 어렵고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해 부산항을 배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시아-유럽 간 수출입 물동량 3위를 차지하는 일본은 자국 60개 항만으로 물량이 분산돼 최대 항구인 도쿄항조차 연간 유럽향발 수출입 물동량이 30만TEU(추정)에 불과하다. 때문에 탄중펠레파스와 연결되는 전용 셔틀 선박이 투입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쿄-로테르담 운송 기간이 38일로, 부산보다 8일이나 더 소요된다.
아시아-유럽향발 물량 4위를 차지하는 베트남(약 100만TEU, 비중 4.5%)은 붕따우와 하이퐁에서 유럽 물량이 처리되고 있고, 5위 태국(약 80만TEU, 3.4%)은 전량 람차방에서 처리된다. 탄중펠레파스와 연결되는 전용 셔틀 선박이 투입되는 비(非) 중국권 항만이 부산, 람차방, 붕타우, 하이퐁, 4개 항만에 불과하다는 점은 선사들 사이에서 부산항의 위상이 중요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Last Port 로서의 위상, 여전히 굳건
'Last Port(라스트 포트)'로서의 부산항의 역할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 Last Port는 말 그대로 컨테이너 선박이 해당 지역의 기항지를 모두 돈 후 최종 목적지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기항하는 항구다. 통상적으로 선적 화물이 이곳에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선사는 Last Port를 떠나기 전 피더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근 지역의 컨테이너를 끌어모아 손익분기점 이상을 채우고 최종 목적지로 떠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환적 물동량이 발생한다.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소석률(화물 적재율)은 각 선사마다 비용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제각각이지만 Last Port의 역할이 꾸준히 유지되는 것이다. A 선사 관계자는 "Last Port에서 소석율이 80%를 넘지 않으면 담당자가 사유서를 써 낸다"고 귀띔했다.
각 선사들의 전략에 따르면 유럽-아시아 노선에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Last Port는 탄중펠레파스, 포트켈랑, 싱가포르다. 대신 전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 최대 소비국인 북미를 연결하는 북미(태평양) 노선에서는 부산항이 압도적인 Last Port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미니가 발표한 북미 노선 9개 중 부산항 기항 노선은 4개로 프린스루퍼트, 밴쿠버, 타코마, 오클랜드, LA, 모빌, 휴스턴 등 총 10개 항구에 기항한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 근해 항구의 정기노선(Weekly Service)에서 부산항의 주간 운항 횟수는 지난해 기준 싱가포르항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해운 전문가는 "중국은 수출만으로도 물량이 벅차고 일본은 물량이 분산돼 있고 싱가포르는 환적항으로서 유럽 노선을 책임지기 바쁘다"며 "부산항은 중국, 일본과 가깝고 근해와 동서항로 노선 모두 발달돼 있어 Last Port로서 최적의 입지를 갖췄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