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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줍줍]HMM과 당근마켓의 공통점(Feat.파생상품 평가손실)

  • 2021.05.26(수) 07:00

2016년 3000억원 규모 CB, 산업은행에 팔아…만기 6월 30일
주가 오르면서 CB 전환가격과 주가 사이 차액 8757억원 발생
시세 반영하라는 회계기준으로 손실 인식…실제 현금유출 없어

Q. 당근마켓에 물건을 팔려고 한다. 얼마에 가격을 올려야 할까?

① 내가 구매했을 때의 비싼 가격 그대로 올린다 
② 무조건 싸게 내 놓는다 
③ 현재 거래되는 물건의 시세를 파악해 올린다 

요즘 핫한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바로 당근마켓이죠. 당근마켓에 물건을 팔 때 얼마에 팔 지는 파는 사람 마음이에요. 합리적인 경제 주체라면 ③번을 선택하겠죠. 처음 구매했을 때의 비싼 가격으로는 팔리지 않을 테고 또 물건 값을 너무 낮추면 판매자가 손해를 보니까요. 따라서 시세를 잘 파악하는 것이 바로 중고거래의 핵심!

시세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점은 해운업체 HMM에도 해당하는 말인데요.

HMM은 지난해 11월부터 파생상품 거래 손실발생이라는 제목의 공시를 3번이나 올렸어요. 3개 공시의 공통점은 '190회 무보증 이권부 사모 전환사채로 인해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발생했다'는 내용. 손실금액은 1154억원(지난해 11월 13일), 4057억원(2월 9일), 8650억원(5월 14일)에 달해요.

당근마켓 이야기하다 뜬금포로 HMM 이야기를 끌고 온 것은 HMM의 파생상품 거래 손실발생 공시와 당근마켓 거래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하시죠. 지금부터 살펴볼게요.

산은, CB 전환권 행사하면 액면가로 6000만주 확보

HMM은 대한민국 최대 해운회사. 옛 이름은 현대상선.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였으나 2016년 해운업계 침체로 인해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겪으면서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어요. 그해 12월 HMM은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은)에 3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어요.

▷관련공시: HMM 2016년 12월 19일 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발행결정)

CB는 발행회사로부터 이자를 받으면서 추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의 종류. 계약에 따라 산은은 2017년 1월부터 현재까지 HMM으로부터 매달 1%의 이자를 받고 있어요.

CB의 만기일은 오는 6월 30일. 산은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원금(3000억원)의 약 110%에 해당하는 현금 3291억원을 돌려받아요. 만약 주식으로 전환하면 1주당 5000원(전환가격)의 가격으로 HMM 주식 6000만주를 받아요.

CB 계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전환가격은 1주당 6269원이었으나 이후 HMM의 주가가 내려가면서 총 5번( 6269원 6077원 6034원 5813원 5250원 5000원)에 걸쳐 전환가격을 낮추는 작업(리픽싱)을 했어요. 5000원은 HMM 주식의 액면가이기도 해요.

어찌됐든 채권자인 산은은 한 마디로 대박이 터졌는데요. 떨어지던 주가는 3000원대에 머물다 4000원, 5000원으로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11월 1만원대를 넘었고 올해 3월에는 3만원, 지난 5월 7일에는 4만원대를 뚫었어요. 25일 기준 HMM의 종가는 4만9350원. 산은이 CB의 전환권을 행사하면 4만9350원인 주식을 액면가에 확보하면서 무려 2조661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어요.

주가·실적 다 올랐는데 회사는 8000억대 손실?

더군다나 HMM은 지난 1분기(연결재무제표 기준)에 영업이익 1조193억원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흑자로 돌아서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어요.

하지만 주가와 실적 동반 상승에도 불구하고 당기순이익은 1541억원에 그쳤어요. 이유는 연결재무제표 포괄손익계산서의 금융원가 항목에 반영된 '파생상품 평가손실' 때문.

1분기 기준 포괄손익계산서 상 금융원가 액수는 9848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 금융원가는 1255억원. 약 8배 늘어난 액수예요. 참고로 금융원가는 회계에서 마이너스 처리하는 항목. 액수가 클수록 당기순이익을 잡아먹어요.

올해 1분기 금융원가가 늘어난 건 파생상품 거래 손실이 늘어났기 때문. 금액은 무려 8650억원. 평가손실은 8757억원인데 평가이익(107억원)을 빼고 최종 손실금액이 8650억원으로 집계됐어요. (사실 파생상품 평가손실(이익)은 단순한 덧셈 뺄셈이 아니어서 간단하지 않아요.)

▷관련공시: HMM 5월 14일 파생상품 거래 손실발생

내용을 잘 모르는 일부 주주들은 손실이라는 단어만 보고 주가에 부정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공시의 세부 내용을 보면 '기타 파생상품 계약에 따라 발생한 파생상품 평가손익을 인식(현금 유출 미발생)'이라는 문구가 보여요. 손실은 났다고 적었지만, 실제 빠져나가는 돈은 없다는 뜻.

당근마켓처럼 HMM도 시세를 보자

현금 유출은 없어서 다행인데 왜 손실이라고 표현하는지 궁금하시죠. 지금부터가 이번 공시줍줍의 핵심!

CB는 사채이므로 기업 재무제표 상 부채로 기록해요. 하지만 CB는 단순 사채가 아니죠. 추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이 붙어 있어요. 사채권과 전환권(=파생상품)을 분리해서 회계장부에 기록해요. 사채권은 부채, 전환권은 자본으로 분류해요.

이때 전환권에 리픽싱(전환가격 조정) 조건이 없다면 그대로 자본항목에 들어가지만 리픽싱 조건이 붙어 있다면 부채항목(파생상품 부채)에 넣어요. 이후 주가변동에 따라 전환가격과 시장에서 거래하는 가격과의 차액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평가손익을 손익계산서에도 반영해야 해요. 손익계산서에 반영한 차액만큼 부채금액도 바뀌겠죠.

HMM은 CB 전환가격(1주당 5000원)을 기준으로 실제 주식시장 거래가격(3월 31일 기준)을 비교해보니 8757억원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어요.

전환가격과 실제 시장에서 거래하는 가격과의 차이를 계산하는 이유는 '공정가치'에 따라 회계를 처리해야 한다는 국제회계기준(IFRS) 방식 때문.

공정가치는 영어로 'fair value'라고 해요. 거래 당사자가 합리적인 거래를 전제로 시장에서 실제 거래하는 가격을 뜻해요. 즉 공정가치=시세라고 이해하면 쉬워요.

국제회계기준에서 공정가치에 근거해 파생상품 평가손실을 재무제표에 기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실제 시장거래가격을 최대한 재무제표에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예요.

당근마켓에서 시세를 고려하지 않고 가격을 높게 책정하거나 아주 낮게 책정한다면 합리적인 거래라고 볼 수 없죠. 기업의 재무제표도 마찬가지. 시장에서 1만원에 거래되는 주식을 5000원에 판다고 올렸다면 5000원만큼의 손해가 발생할 거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어요. 당근마켓으로 비유하면 물건 값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올린 것.

당근마켓 거래는 그냥 좀 싸게 올렸다고 생각하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기업의 돈은 수많은 주주, 직원, 거래처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예요. 따라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주식을 싸게 팔아야 한다면 그 만큼 받지 못할 돈이 늘어나는 셈이니 차액을 손실금액으로 잡아 시세를 정확히 회계에 반영하도록 한 것이죠.

파생상품 평가의 두 얼굴

아이러니한건 기업이 잘 나갈수록 파생상품 평가손실 금액이 커진다는 점. 지금까지 주가 하락 시에만 CB의 전환가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만 최근 금융위원회는 주가상승 시에도 전환가격을 상향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고 발표했어요.)

HMM은 3번의 파생상품 평가손실 발생 공시를 발표했어요. 모두 산은에 판 CB때문. 파생상품 평가손실은 지난해 11월 1154억원, 올해 2월 4057억원, 5월에 8650억원을 기록했어요. 주가가 점점 올라가면서 손실금액도 커진 것.

헷갈리면 안 되는 점은 파생상품 평가손실 금액은 말 그대로 '평가' 당시의 주가와 전환가격의 차이를 기록한 수치라는 것. 따라서 3번의 평가손실을 합산해서 손실이 많다고 평가하거나 이를 기준으로 회사에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필요는 없어요.

그렇다고 파생상품 평가손실 공시가 무시해도 되는 내용은 아니에요. 파생상품 평가손실 금액이 높다는 것은 반대로 채권자가 주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 특히 이번 HMM의 CB는 주가상승이 가팔라 전환권 행사에 따른 차액이 상당해요. 

만약 산은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얻겠다고 대량의 물량을 쏟아낸다면 당연히 기존 주주들에게 좋지 않겠죠. 물론 산은은 아직 CB를 주식으로 전환할지 발표하지 않았고,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더라도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특성상 당장 매물을 쏟아낼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해요.

만약 산은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회계장부는 어떻게 바뀔까요. 부채항목에 들어간 사채권은 사라지고 주식전환에 따라 자본금은 늘어나요. 산은에게 줄 새로운 주식을 찍어내는 것이어서 자본금(액면가×발행주식 수)이 늘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부채로 잡혔던 파생상품 평가손실은 회계의 자본항목 내 자본잉여금으로 들어가요. 주식을 발행하면 시장거래가격에서 액면가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자본잉여금 항목 안의 주식발행초과금으로 잡히는 것과 같아요.

파생상품 평가이익이란

앞서 파생상품 평가이익을 잠깐 언급했는데요. 이는 파생상품 평가손실의 반대말이에요.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전환가격보다 주가가 높아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파생상품 평가이익은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낮아서 발생하는 금액이에요. 주가가 높았을 때는 전환가격과의 차이만큼 회사가 손해를 본다고 간주하지만, 주가가 전환가보다 낮으면 주식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셈이니 회사가 이익을 본다고 평가하는 것이죠. 물론 평가이익이든 평가손실이든 모두 다 현금 유·출입은 없어요. 

HMM의 14일자 파생상품 거래손실 발생 공시를 볼까요. 5. 기타 투자판단과 관련한 중요사항을 보면 '①2021년 1분기 파생상품 평가손실: 8757억원, ②2021년 1분기 파생상품 평가이익: 107억원'이라는 내용이 있어요. 손실은 빼고 이익은 더해 총 8650억원의 손실이 난 것이죠.

너무 큰 평가손실에 가려져 있지만 평가이익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HMM은 지난해 12월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2400억원 규모의 CB(199회차)를 발행했는데요. 발행 후 4개월 만에 회사가 CB를 갚겠다고 콜옵션을 행사했어요.

콜옵션과 풋옵션(채권자가 회사에 CB를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가치,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주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계산이 엄청 복잡해서 HMM도 용역기관을 활용해 계산했다고...)와 전환가격과의 차액이 발생하면서 199회차 CB에서는 약간의 평가이익이 발생한 것이죠.

독자 피드백 적극! 환영해요. 궁금한 내용 또는 잘못 알려드린 내용 보내주세요. 열심히 취재하고 점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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