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연말에는 '산타랠리' 기대감이 본격화되지만, 올해만큼은 서학개미들이 콧방귀를 뀌는 모습이다. 미국 주식시장 상승에 베팅하는 상품을 처분하고 하락 베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증시에 대한 회의적인 예측이 번지며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용지표 호조로 인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관측 속에 증시 하방 압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숏베팅 ETF 사고, 롱베팅 ETF 팔고
9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투자자들은 지난달 7일부터 이달 7일까지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베어3X 상장지수펀드(ETF)(SOXS)를 1억8025만달러어치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숏 QQQ ETF(SQQQ)도 5813만달러가량 사들였다.
SOXS는 ICE 반도체 지수 하락에, SQQQ는 나스닥100 하락에 3배 베팅하는 상품이다.
아울러 프로셰어즈울트라프로 숏 다우30 ETF(SDOW)도 1809만달러어치 담았다. 다우존스지수가 하락하면 3배의 수익률을 얻어가는 상품이다. 기술주 주가를 반대로 3배 추종하는 BMO 마이크로섹터스 FANG 인덱스 3X 인버스 레버리지 ETN(FNGD)도 865만달러가량 순매수했다.
반면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상품 1, 2위는 지수가 상승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들이 차지했다.
매도 물량이 가장 많았던 상품은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TQQQ)였다. 이는 SQQQ와는 반대로 나스닥100의 수익률을 3배로 쫓는 ETF다. 투자자들은 한달간 11억744만달러어치 매도했다. 또한 투자자들은 ICE 반도체 지수 상승률을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불 3X SHS ETF(SOXL)을 10억9859만달러어치 팔았다.
긴축 장기화에 짙어진 경기침체 그림자
그간 증시 변동성 속에서 포지션을 자주 뒤바꿨던 투자자들은 이제 하락 베팅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해를 넘겨도 연준의 긴축 정책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팽배해진 탓이다.
연준은 그간 물가상승을 압박하기 위해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해왔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꺾이며 일각에선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피봇·Pivot)을 기대하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견조한 고용지표가 피봇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미국 11월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신규고용은 26만3000개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인 20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대비 0.6% 증가했다. 이 역시 시장 예상치인 0.3%를 웃돌았다. 신규 일자리가 계속 늘고 임금이 뜀뛰며 연준에 금리 인상을 이어갈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이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는 연준의 피봇 기대감을 완전히 꺼뜨렸다. WSJ는 연준이 내년 2월에도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인상을 마친 최종 기준금리가 현재 시장에서 예상하는 5%를 웃돌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선 이 같은 상황이 경기 침체와 더불어 증시 하방압력을 키울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월가에선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JP모간,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거대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내년 미국 경제가 침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고 금리가 올라갈 경우 저축과 소비가 동시에 줄어 불황이 닥칠 것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허석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기대 인플레 상승을 용인하고 피봇이 지연될수록 장기금리 상방 압력으로 증시 밸류에이션에는 추가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장현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증시 격언과 함께 피봇에 대한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며 "현재 베어마켓 랠리는 점차 상승탄력이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증시가 한동안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는 모습이다. 최근 한달간 미국 만기 20년 이상 국고채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국고채 불3X ETF(TMF)에 몰린 자금은 5421만달러 규모다. 아이셰어즈 20년+ 국고채 ETF(TLT)에도 2994만달러가량의 순매수액이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