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확인 입출금 계좌(이하 실명계좌) 발급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소 가상자산거래소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가상자산 업계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은행권의 관심도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중소 거래소의 거래량이 사실상 '0'에 가까운 지금, 은행이 실명계좌를 발급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메리트도 크지 않아 전망은 더욱 어둡다.
6번째 원화거래소 탄생 '불투명'
26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에 신고된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자 27곳 중 시중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에 성공한 가상자산거래소 사업자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까지 5곳뿐이다. 2021년 9월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받아야 원화와 코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
특금법 시행 후 은행과 새롭게 실명계좌 계약에 성공한 거래소는 고팍스가 유일하다. 22곳의 가상자산거래소는 오로지 코인 거래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거래량이 적어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원화거래소의 영업이익은 6629억원을 기록했지만, 코인거래소는 327억원의 적자를 냈다.
코인거래를 취급하는 중소 거래소는 특금법 시행 후 실명계좌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중소 거래소 10개사는 협의체 VXA를 출범하고 실명계좌 확대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우리는 원화거래를 하지 못해 제대로 된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금융권도 가상자산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한 거래소와는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상자산 업계 내·외부적으로는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관리 책임을 은행에 부여하다보니 수반되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면밀하게 보고 있는 상황이고, 사건사고도 많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실명계좌 받는다 해도 경쟁력 의문
지난해 FTX 파산, 위믹스 사태 등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된 후로는 더욱 보수적인 분위기다. 다음달 서비스 종료를 앞둔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 '페이코인'은 은행의 신중해진 태도를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페이코인은 금융당국이 원화를 취급한다는 이유로 실명계좌 발급을 요구하자 지방은행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은행권이 리스크 검토를 강화하면서 시한 내에 계좌를 발급받는 데 실패했다.
은행이 그간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내준 이유는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파생 거래를 늘리기 위해서다. 국내 최대 규모 거래소인 업비트와 제휴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대표적 예다. 케이뱅크의 가입자 수는 업비트와 계약한 2020년에는 219만명이었지만, 가상자산 활황기였던 2021년에는 717만명으로 증가했다. 카카오뱅크 또한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하면서 코인원과 제휴를 맺기도 했다.
그러나 코인 거래를 주로 하는 중소 거래소의 점유율이 1%도 되지 않다보니 케이뱅크 때와 같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남는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업비트의 점유율은 80%에 달하며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까지 원화거래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가상자산 거래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코인마켓캡에서 확인하기 어렵거나 거래량이 0에 가까운 거래소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금세탁방지(AML) 능력을 고려해 암묵적으로 '1거래소 1은행' 규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가상자산 거래소 제휴 계획을 밝힌 은행은 적어 더욱 진입이 어렵다.
가상자산 시장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의 주 목적은 수수료가 아니라 고객 확보인데, 거래량과 회원수도 적으면서 리스크가 큰 중소 거래소가 실명계좌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고팍스의 사례처럼 원화 거래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업비트와 같은 코인을 취급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특화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발굴해 상장시키는 게 오히려 경쟁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