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을 두고 불거진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 사태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통합에 반대하는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주주총회 표대결이 불가피해졌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최근 한미사이언스를 대상으로 가처분 신청 두 건을 제기했다. 하나는 내달로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등 신규 이사 6명을 선임하는 내용의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해달라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한미사이언스 주주명부를 열람 및 등사(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앞서 형제는 지난달 한미사이언스가 OCI홀딩스를 상대로 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한 바 있다. 3개 사건은 모두 같은 재판부(수원지방법원 제31민사부)가 맡아 다음 달 6일 심문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형제가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낸 이유는 한미사이언스가 임종윤·종훈 측이 이달 제안한 이사 신규선임과 관련한 주주제안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그룹이 정기주총에서 해당 제안을 상정하지 않는 사태에 대비해 가처분 신청이라는 안전장치를 건 셈이다. 또 한미사이언스의 주주명부를 확인해 표대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다.
상법에 따라 상장회사는 주주제안의 내용이 관련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할 경우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까지 한미사이언스는 형제가 낸 주주제안 안건 등을 정기주주총회에 상정할 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상장사는 정기주총 개최 2주 전까지 이를 공시해야 한다.
법조계는 이번에 한미사이언스가 주주제안 안건을 미상정할 경우 법원이 형제가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일정비율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상법상 주주제안권 행사 요건을 갖춘 주주 측의 가처분 신청을 대부분 인용하고 있다. 과거 금호석유화학, 한국철강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 법원이 관련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임종윤·종훈 측의 가처분 신청으로 다음 달 열릴 예정인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에서 장차남과 모녀(송영숙·임주현)가 표대결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형제는 주주제안을 통과시켜 신규 이사 6명을 선임한 후 직접 한미약품그룹 경영에 복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송영숙 회장 등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캐스팅보트로는 지난해 3분기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를 보유한 2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꼽힌다. 한미그룹 오너일가 장차남과 모녀 간의 지분율 차이는 약 0.5%포인트로 그의 의사에 따라 표대결의 향방이 갈릴 수 있다.
소액주주들의 반대도 변수다. 법무법인 이강의 김철 변호사는 형제가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 소액주주를 배제한 신주발행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소액 주주들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총 21%이다.
김 변호사는 "소액주주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판단에 가처분 신청에 참여하게 됐다"며 "이번 가처분 신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총 전까지 소액주주들의 의사를 모으는 플랫폼을 만드는 등 추가적인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도 정기주총 표대결에 대비해 소액주주들에게 OCI그룹 통합 시너지를 알리는 한편, 신 회장을 설득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남에서 신 회장과 소통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신 회장은 누구보다 한미의 성공을 바라고 있어 궁극적으로 한미를 위한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형제가 이번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은 주주제안 안건이 미상정될 경우를 대비해 보험과 같이 드는 조치로 볼 수 있다"며 "이번 경영권 분쟁은 결국 표대결을 거쳐야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