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요구에 결국 '불허' 결정을 내렸다. 반출 전례가 없는 데다 안보 위협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 등 국내 정세가 불안한 상태인 데다, 구글이 소재한 미국도 극우 성향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교역 여건 등에서 보호무역이 강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결론으로 풀이된다.
18일 국토교통부 소속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 6월 구글(Google Inc.)이 신청한 지도 국외반출 민원에 대해 '지도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를 통해 "반출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협의체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이 참여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구글의 지도반출 요청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안보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며 "구글 위성 영상에 대한 보안 처리 등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한 보완 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앞서 구글은 국토지리정보원이 제작하고 SK텔레콤이 가공한 축척 5000분의 1 수치지형도(전국 디지털지도)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구글 본사와 세계 14곳의 데이터 센터로 반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국내 고축적 지도정보를 자사 글로벌 지도서비스 솔루션(구글 맵)과 통합 운영한다는 목적에서다.
애초 구글은 2007년 처음으로 우리 정부에 지도 정보 반출을 요구했지만 거부 당했다. 이듬해에는 한미통상회의 등을 통해 반출 관련 규제가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이를 내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에 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서버를 국내에 두고 지도정보를 활용하거나, 보안시설을 가리는 조건으로 예외적으로 반출을 승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구글은 데이터 분산과 이동 등의 기술적 특성상 데이터의 저장 위치를 '한국 내' 등으로 지정할 수 없고, 보안시설 가림 처리도 서비스 활용 상 어렵다는 태도만 끝까지 고수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외국업체 중 애플의 경우 국내 업체과 제휴하고 국내에 서버를 두는 방식으로 지도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百度, Baidu)는 정부의 지도 데이터 대신 국외에서 사용자 제공 정보를 모아 제작한 지도 데이터를 활용중이다.
앞서 정부는 지도 데이터를 활용한 공간정보 산업의 발전 가능성과 안보 우려 등을 견줘 지난 8월25일을 시한으로 구글의 반출 요구에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를 결정하지 못하고 다시 결론을 내리기까지 시한을 60일 연장한 바 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안보 관련 이슈 외에도 최근 국내·외 정세의 불안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협의체 한 관계자는 "최근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모두 정치적·정책적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이어서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에 큰 문제가 없다는 측 논리에 힘이 빠진 듯하다"고 전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는 일단 정부 판단이 적절했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측은 "지도 데이터 반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공간정보 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지도를 기반으로 한 미래 산업 경쟁에서 글로벌 기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혁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 측은 "공간정보 개방은 국내외 기업에 대해 차별없이 진행할 것"이라며 "사물인터넷, 자율자동차 등 신기술 발전과 관광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관련 정책도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향후 구글측이 입장을 바꿔 재신청할 경우에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구글은 "한국의 안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번 결정은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글 관계자는 "앞으로도 계속 관련 법규 내에서 가능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신기술 발전 등에 관한 정책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긍정적"이라며 "한국에서도 구글지도 서비스의 모든 기능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